책을 덮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은 과연 인간이 만든 법이 얼마나 완벽한 것일까 였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어떤 잣대로든 죄인을 처단하는 법이 있어왔다.
우리나라의 법원에도 저울을 든 여신의 상징이 있지만 과연 인간이 저지른 죄를 저울로 재듯 정확하게
판단하여 처벌하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법의학자 헤르츠벨츠는 이혼후 홀로 살고 있었고 힘에 부칠만큼 부과된 자신의 일에 피로감을 느끼긴
했지만 정의로운 사고를 지닌 남자이다.
그의 성정을 보여주는 사소한 사건이 하나 발생된다. 새끼를 가진 개를 학대한 사내를 헤르츠벨츠가 무자비하게 손을 봐준 일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그는 댓가를 치를 것이지만 갑작스러운 딸의 납치사건때문에 묻혀버린다.
토막난 여자 시체를 부검하던 헤르츠벨츠는 시체의 목구멍안에서 캡슐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캡슐안에서 그의 딸이름인 한나(Hannah)가 적혀있는 쪽지가 발견되고 그의 휴대전화로 걸려온 딸의 다급한 목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말것과 에릭의 메시지를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부검을 미처 끝내지도 못한 채 서둘러 딸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헤르츠벨트. 하지만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교통은 엉망인 상황. 마침
그에게 부검참관을 신청했던 내무부장관의 아들 잉골프가 호화스러운 SUV 포르쉐로 사건의 열쇠가 있는 섬 헬고란트로 향한다.
하지만 섬은 때마침 몰려오고 있는 태풍으로 인해 배편이 끊겨있고 섬 안에는 스토커로 변한 연인 대니를 피해 숨어있는 린다가 공포에 쌓인채
누구에겐가 쫓기고 있다. 쓴적이 없던 수건이 젖어있고 공포로 인한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파고든 침대에는 누군가가 있었던 듯 온기가 남아있었다.
린다는 결국 집밖으로 뛰쳐나오고 바닷가 근처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시체는 '에릭'이라고 휘갈겨 쓴 글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곁에는 휴대폰이 들어있는 손가방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고 휴대폰에 걸려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린다. 그 번호는 헤르츠벨트였고 린다가 발견한 전화는 한나의 것이었다. 딸의
흔적을 쫓기위해 '에릭'의 시체를 부검하도록 린다에게 요청하는 헤르츠벨트.
만화가인 린다는 그의 딸을 살리기 위해 에릭의 시체를 부검하는데..
결국 에릭의 목구멍에서는 늙은 여자의 사진이 발견된다.
나라마다 법체계는 다르겠지만 이 소설의 무대인 독일의 경우 탈세자가 성범죄자보다 형량이 더 많다고 한다.
특히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경우 아주 가벼운 형량을 치루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바로
이런 경우를 당한 피해자의 아버지들이 벌이는 복수극이다.
성범죄자를 다시는 사회에 발을 디딜수 없도록 최고형량을 판결했다면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겨우 열 몇살의
소녀들을 납치하여 성폭행을 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며 즐기는 파렴치한 성범죄자들.
고통속에 죽어가는 소녀들과 그의 부모들의 끔직한 상처들. 결국 법이 재단하지 못한 댓가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나선 아버지들은 헤르츠벨트의
딸을 납치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맛보게 하고 헤르츠벨트가 믿었던 정의가 얼마나 허무하고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낱낱이 펼쳐보인다.
그리고 한 남자의 집착으로 나락에 떨어진 린다의 사건을 교차시켜 거의 마지막장까지 범인을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독일 사이코스릴러의 거장 피체크와 천재 법의학자 초코스의 합작품인 이 소설은 법의학자들의 고뇌와 애끓는 부정(父情)이 불의와 맞서 싸우는
스릴러이다.
납치된 딸은 범인에게 동정을 보이고 동조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아버지 헤르츠벨트를 괴롭힌다.
이혼후 바쁘게 살았던 그가 딸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을 뉘우치게 되고 유명 변호사를 고용하여 자신의 죄를 씻으라는 주변인들의 조언도 뿌리친
채 군중속으로 사라진다. 살아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를 담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