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오후의 성찰
정성채 지음 / 싱긋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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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은은한 산사에서 그윽한 향이 깃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 느낌입니다.

작가의 프로필이 정확치 않아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제목처럼 이제 살짝 해가

기우는 어느 늦은 오후즈음의 연륜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나저나 대략 3천 권의 책을 섭렵해야 심안이 열린다니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실제로 천 권이나 읽었으려나...그나마 제대로 읽은 책은 절반이 안될지도 모릅니다.

이 분의 작품은 처음인데 상당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연륜도 그렇거니와 인용한 책들을 보니 고수의 포스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3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은 분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글재주를 떠나서 많이 읽고 느끼고 솔직한 마음을 적을 수 있다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있구나 싶어

위안이 됩니다.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수인선 근처의 어느 동네에서 자랐던 이야기며 지금도 형제들끼리 옛추억의 맛을 찾아 옛동네에서 술을 한잔 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시큰해집니다. 아마도 지금은 갈 수 없는 이북의 어느 섬이나 황해도가 부모님의 고향이지 싶습니다. 어린시절에 먹던 만두며 녹두빈대떡이 그립다는 것을 보면 이북이 고향인 부모님이 해주시던 그 음식이 저도 그립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명함이 있습니다. 명함꽂이에 꽂다가 너무 넘쳐서 아예 조그만 상자에 담아놓았을 정도로 천 장 이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나를 기억해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저도 그 많은 명함의 인물들이 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섣불리 명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마치 명함을 건네주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것은 아닌지..그 냉혹함에 겁이 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명함이 누군가의 손에서 버려진다는 것은 곧 잊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중에서

그렇군요. 저도 이렇게 잊혀질까봐 두려운데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하지만 덜어내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는다는데 쌓인 명함들이 갑자기 버겁습니다.

 

 

맛집을 찾아 어디든 달려가고 특히 값싸고 양이 푸짐하면 더 행복하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저도 맛집이라면 메모까지 해가며 꼭 찾아가는 순례객이거든요.

소개해주신 자유로 국수집을 실제로 검색해서 다음에 일산 넘어가는 길에 꼭 들러볼까 기억해 두기로 했습니다.

비싸고 맛있는 집이야 싸고 맛있는 집보다 더 많은 건 사실일테지요. 값싸고 양많은 음식을 쫒은 우리같은 사람들이 결코 천박한 취향은 아니라는 말에 어깨가 펴지는 느낌입니다. 동지애가 팍팍 느껴지네요.

 

사실 물흐르듯 말하듯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 읽고 나면 산사에서 유쾌한 대화를 나눈것 같이 청량한 글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렇게 다 살려놓으시다니 참 맑은 정신을 지닌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글이니 깊은 연륜속에서도 청량함이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듭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면서 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다정한 글로 잠시 시름을 잊었습니다. 글의 힘이란게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나비의 팔랑거림이 멀리 저에게까지 와주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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