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 내일을 움직이는 톱니바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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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었다. 표지는 에니메이션처럼 가볍게 느껴졌지만 제목에서 오는

묵직함은 뭐랄까...과거의 어느 시간은 정말로 수리받고픈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하는 힘이 느껴졌다.



이제는 퇴락해버린 상가의 거리에는 오래된 신사 쓰쿠모가 있고 간혹 열린 가게중에는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란 노트 정도의 크기로 된 간판이 걸린 곳이 있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수리가게를 운영하는 슈지는 '추억의 시계를 수리합니다'란 간판에서 '계'자가 떨어져 나간채로 두었기 때문에 졸지에 추억을 수리하는 가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가게에서 크로스 건너편에는 헤어살롱 유이가 있다. 얼마전 독립을 하여 이 도시에 자리를 잡은 아카리의 여동생 카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어느 날 불쑥 이 거리에 나타난다.

미리 연락이 없이 헤어살롱 유이에 나타난 카나는 언니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사무에차림의 이상한 젊은 남자가 추천해준 라임이라는 카페로 향한다. 그 곳에서 기모노차림의 묘한 느낌의 여인에게서 언니의 유품을 보관해둔 보관증을 받게된다.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데다 어머니가 다른 자매였다는 그 여인은 본적도 없는 언니가 죽은 후에 자신에게 물려준 이 보관증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 시계는 10여년 전 그녀들의 아버지가 맡긴 것으로 수취인을 언니앞으로 해놓았었는데 왜 언니는 본 적도 없는 자신에게 이 유품을 맡겼던 것일까.


보관증을 떠맡기고 사라진 여인처럼 카나와 아카리역시 아버지가 다른 자매이다. 새어머니가 데려온 딸 아카리는 어머니가 같은 카나를 귀여워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먹한 사이가 되었고 독립한 이후에는 서로 연락도 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불쑥 그녀앞에 나타난 여동생 카나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여러꼭지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무대는 퇴락해가는 쓰쿠모상가거리이다. 마을에도 나이라는게 있다면 여기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여유 있는 행복에 젖어 있는 말년의 마을로 설정되어있다. 언제든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마을같은. 바로 그 거리에 있는 오래된 시계 수리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스럽다.

오래전 학교동창이었던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상처를 지니고 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정과 사랑의 묘한 경계선에서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야반도주를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여자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오랜 오해가 너무도 부끄러워진다. 우리도 이런 오해로 쌓인 상처를 묻어두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에 걸린 아버지와 어미를 잃은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 급하게 여자들 들였던 모리무라는 아무도 거두어 줄 곳이 없는 여자를 진정한 아내로 대접하지 않는다. 누가 물으면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식모라고 말했던 무뚝뚝한 모리무라였지만 자신을 거두어준 남편을 극진히 대했던 아내는 남편이 건네주었던 집안의 보물시계의 태엽장치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던 모리무라는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시집오기전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았던 딸을 잃었던 아내에게 딸의 이름을 가진 강아지를 선물할만큼 의외의 따뜻함을 지녔던 모리무라는 사고로 죽은 개를 대신하여 다시 강아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꼭지마다 참으로 따뜻한 결말들이 있어서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딘가 한쪽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아카리에게 맘깊은 시계수리사 슈지의 마음씀씀이가 대견스럽다. 슈지는 시계에 얽힌 스토리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게된다.

오래된 시계에 얽힌 사연을 해독하고 자연스럽게 해답을 찾아가도록 길을 열어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인물은 승복 비슷한 차림을 한 대학생 다이치이다.

신사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불쑥불쑥 선문답같은 말을 내뱉거나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를 넘다드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의 젊은이다.

누구에게나 지워버리고픈 혹은 고치고픈 추억의 시간들은 있다. 정말 이런 시간들을 수리해주는 가게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두 동생들에게도 따듯한 기억을 좀 더 만들어주고 싶고 후회스런 선택의 시간들도 수리하고 싶다.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기억도 수리해주고 싶다.

어디엔가 분명 있었으면 좋을 쓰꾸모 신사 거리 상가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해주는 슈지의 시계방을 알고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아마 내 시간을 수리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테지만 기어이 찾아가 매달리고 싶어지는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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