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기라 불리는 프랑스의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고 있다. 프랑스혁명당시 국민 총사령관 라파예트가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모자의
표지 빚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를 떠올리면 평등과 박애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 갔을 때에는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는 것에 놀랐었다.
특히 아프리카쪽 인종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사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국가의 노화로 젊은 세대들이 적어지고 있고 그
틈새를 다양한 인종들이 메우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하는데 그런 일들을 하기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딱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기나긴 여정 끝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순박한 청년 삼바 시세도.
말리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곳이다. 19세기 아프리카의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하면서 말리도 프랑스령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지금도 말리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한 때는 프랑스령이기도 했으니 많은 자원들과 인력들이 프랑스를 위해 쓰여졌을 것이다.
프랑스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다가 1986년 프랑스 정부가 말리 이민자를 불법체류자로 국외 추방시킨후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뭐랄까...기껏 쓸만큼 쓰다가 내동댕이쳐진 꼴이 된 것이다.
이미 프랑스문화와 문명에 길들여졌던 말리 사람들은 당연히 프랑스를 동경했을 것이다.
책에는 말리의 현재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로 부터 독립후 오랜 군부의 독재로 피폐해지지않았을까. 조국이 건강하지 않으니
삼바같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등지고 탈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몇 차례의 실패를 겪고 천신만고끝에 프랑스에 도착한 삼바는 오래전 프랑스에 정착한 외삼촌 라무나의 지하방을 찾는다.
프랑스에 온지 25년이 된 라무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식당 여주인의 배려로 남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삼바는 임시체류증을 얻어 10년이 넘게 일을 하게 된다. 프랑스는 체류 10년이 넘으면 정식체류증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삼바는 10년동안 프랑스에 머물렀다는 증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벵센 유치소에 감금된다.
여권마저 빼앗긴 삼바는 불법체류자를 도와주는 시마드란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앨리를 만나게 된다.
앨리스의 도움으로 강제추방의 위기에서는 벗어나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결국 추방될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불법체류자신세로 삼촌의 체류증을 가지고 일거리를 찾아 일을 하던 중 벵센 유치소에서 만난 조나스의 애인 그라스외즈를 찾아간다. 언젠가
유치소에서 나가면 그녀를 찾아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지만 삼바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라스외즈를 사랑하게 된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조나스의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소에서 풀려나 정식 채류증을 받게된 조나스는 그라스외즈와 동거를 시작하고 삼바는 자신의 사랑을 접는다.
그 사이 삼바는 삼촌의 체류증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쫓기게 되고 일을 얻기 위해 공사장에 칩입해 다른 사람의 체류증을 훔치게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신부의 은식기를 훔친 장 발장을 떠올렸다.
삼바가 죽음을 무릅쓰고 프랑스에 온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말리에 있는 엄마와 여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삼바는 프랑스에서 전혀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정식 체류증이 없어 제대로 품삯도 받지 못하는 일들을 전전하고 그렇게 얻은 돈들은 방세와 가족들에게 부치는 돈으로 다 없어진다.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도 삼바는 언젠가 정식 체류증이 나오면 당당한 프랑스인이 되리라 꿈꿨다.
하지만 그 꿈마저 사라져버리고 남은 것은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잡일과 굳은 살이 박힌 손뿐이다.
작가는 현재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한 이주노동자들,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고발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온 이민자들은 사실 전혀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프랑스의 맨 하층에서 겨우 버티고 살아간다.
개중에 많은 사람들은 추방되거나 추방될 공포에 시달리면서 더러운 골목길 뒤에서 서성거린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들에 유용하게 이용하면서 프랑스는 시침을 딱 떼고 이용가치가 없는 체류자들을 추방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프랑스의 일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삼바들이 숨을 죽인채 살아가고 있다.
가난한 조국에서 살 수 없어서, 혹은 내전을 피해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삼바들이 조국을 등지고 있는데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는
국가는 거의 없다.
하긴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거두어 먹이느라 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의 현실도 무겁게 다가온다. 삼바처럼 프랑스에 10년 이상
체류한 이주자들은 구제해줘야하지 않을까.
파키스탄, 콩고, 터키, 방글라데시, 말리....참으로 안타까운 이주자들이 넘친다.
태어난 장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사람들. 인간다운 삶을 선물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저려온다.
비록 허리 한 가운데가 동강난 조국이지만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이미 하지 않게 된 일들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그라스외즈는 조나스에게 삼바와의 하룻밤을 얘기한 모양이다. 조나스는 의도적으로 삼바에게 술을 먹자고 한 후 문제를 일으켜 경찰에 체포되도록
일을 꾸민다. 자신의 여자를 사랑했던 삼바에게 복수를 하려던 조바스는 오히려 죽음에 이르고 절망에 빠졌던 삼바는 조바스의 죽음으로 새 삶을
선물받는다.
의외의 반전이 놀라왔다. 누군가의 불행이 행복이 될 수 있다니...선한 삼바에게 이런 반전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삼바는 당당한 프랑스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삼바'라는 이름으로 살지는 못하겠지만.
영화로도 제작된 '웰컴, 삼바'! 영화에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진다. 진정한 인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