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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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이란 주제를 아니, 여성의 성기를 빗대어 세상에 도전장을 냈던 이브 엔슬러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녀의 이름은 낯설어도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연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녀가 왜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 '브이데이'라는 운동을 창설하고 전사로 변했는지는 그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속에서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의 성폭력이라니...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사촌오빠로 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했었다.

왜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이런 무자비한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그것도 피를 나눈 혈연끼리 말이다.

가장이면서 가정을 장악했던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했었고 그녀를 범했으며 나중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런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방탕 그 자체였다.



알콜과 마약 거기에 섹스중독에 이르기까지 그 어린 영혼에게 깃든 죄악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상처를 그렇게라도 잊고 싶었던 몸부림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여성운동가가 되고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사랑이 깊고 정의로우며 용기가 있는 인물인지를 알게된다.

아직은 젊은 오십대 중반에 찾아온 자궁암은 전사였던 그녀를 무릎꿇게 만든다.  언젠가 분명 찾아올 죽음이었지만 자신의 죽음은 이런 방식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단다. 하긴 그녀는 암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만큼 허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궁을 들어내고 결장과 직장마저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배설물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야하는 비참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녀는 왜 자신에게 이런 비극이 생겼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본다.

'내 피속에 있었을까?', '잘 울지 않아서였을까?', '난잡한 성관계 때문이었을까?'

물론 유전적인 요인과 그녀가 살아온 환경이 암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이런 비극앞에서는 원인을 따지고 싶어질 것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감동받았던 종교의 신에게 기도한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가져가 주세요.'라고.

몸이 느끼는 통증도 두려웠겠지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에 너무 솔직했고 에너지는 넘쳤으며 더구나 암에 걸릴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자신의 몸에서 만큼은 도도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여성성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잘라내고 똥주머니를 차야하는 처지라니...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7개월의 치료기간동안 그녀는 그녀에게 속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화해하고 떠나보내고 그리고 받아들인다.

어린 딸을 방관했던 엄마를 용서하고 그녀의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자신도 그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심지어 죽음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죽음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그녀를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불행에 빠졌을 때 자신이 살아온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녀가 병상에 누워 절망하고 있었을 때 그녀의 삶에 들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병상을 지킨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음을 충분히 느껴야한다.

15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은 두 줄짜리 이메일을 보냈고, 13년을 함께 살았던 남자는 카드 한장을 보냈고, 그 만큼의 기간 동안 사귀었던 다른 애인은 아예 연락도 없었다니..사랑에 대한 실패, 힘이 되는 기억도 없고 절망이 훨훨 타올랐다는 그녀의 탄식이 가슴아프다. 하지만 그깟 남자들 쯤이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세상에 나온 그녀가 반갑다. 역시 죽음도 그녀의 투지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던 것 같다. 물론 언젠가는 그녀를 데려가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우아한 방법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녀에게 어울리니까.


죽음과 조우한 고통의 시간조차도 거침없이 넘어서는 그녀가 오랫동안 그늘속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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