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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저 광활한 우주 어디엔가 '천국주식회사'가 있다고 한다. 물론 최고경영자는 하느님이시고 그가 만든 인간들을 돌봐주는게 주업무이다. 아니 그래야 맞는데 이제 초심을 잃은 하느님은 인간세상에 싫증이 나셨단다.
모든 업무는 천사들에게 맡기고 골프를 치러 다닌다거나 60인치는 족히 넘을 텔레비전앞에 앉아 리모컨을 돌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단다. 루빅스 큐브를 맞추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긴 했지만 이미 맞춰놓은 한 면이 다시 흩어질까봐 요즘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란다.
이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요즘 너무 나태해지신거 아니야? 근무태만인 하느님의 모습을 보니 절로 끌끌 혀를 차게 된다. 하긴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신 인간이 당신 맘대로 되지 않으시니 손을 놓으신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천국 주식회사는 모든게 갖추어져 있다. 하느님이 취미생활에 빠지신 동안 각 부서에 베치된 천사들은 지구에 있는 인간들을 살펴보고 기적을 행하거나 상을 주거나 벌을 주기도 하는등 엄청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크레이그는 기적부소속 천사로 연속으로 이달의 천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천사였다.
이제 막 수습딱지를 뗀 일라이자가 크레이그가 소속된 기적부로 오면서 둘은 친한 사이가 된다.
일라이자는 기도 수취부에서 계약직 천사로 3년간 노예처럼 일했으며 인간들이 보내오는 수많은 기도문들을 정리하여 하느님께 전하는 일을 했었다. 혹시 겹치는 기도문이 있으면 묶음므로 철을 해서 올려보내고 하느님이 보시기 좋게 기도를 등급으로 나누어 올려보내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일라이자는 크레이브의 친절한 설명으로 기적부에서 하는 일들을 배우게 되고 두 천사는 급격히 가까워지게 된다.
어느 날 자신의 컴퓨터에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코드 블랙이 뜨자 일라이자는 하느님께 급박함을 전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하느님을 뒤로하고 나오던 중 자신이 올려보낸 기도문들이 한구석에 처박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대기에서 채취하고 있는 크세논 개스만을 남기고 인간에게 종말을 고하기로 결정한 하느님께 크레이브는 내기를 해서 자신이 이기면 인간세상을 없애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낸다.
그가 고른 기도문은 샘과 로라가 서로 잘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다. 둘은 오래전부터 사랑을 느꼈지만 용기가 없어 데이트 신청조차 못하고 있던 쑥맥 남녀였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크레이브와 일라이자는 이 쑥맥 남녀의 사랑을 완성될 수 있도록 기적을 행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
하지만 쑥맥이다 못해 멍청하기만 두 남녀는 천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날려버리기 일쑤다.
일단 절대자를 '천국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세우고 천사들의 일과를 코믹하게 그리는 작가의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매주 교회에 나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도들이 보면 기겁하겠지만.
하느님이 인간에게 종말을 고하기까지 인간들이 너무 방만하게 살아온 것도 인정한다. 오죽하면 하느님이 인간들을 버리려고 하셨을까. 때때로 나도 이 세상이 한 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자신의 소명을 지키던 두 천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샘과 로라의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그 지난한 과정들을 보다보면 두 남녀의 멍청한 사랑에 화가 날 정도이다. 하필이면 이 커플이 지구를 구할 주인공이라니..
풍자와 유머로 미국에서는 이미 유명작가로 소문난 사이먼 리치의 발칙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연말을 보내고 보니 어느 새 새해가 밝았다. 제발 인간들이여 정신차리고 하느님이 우리를 포기하고 레스토랑을 개업하겠다는 빌미를 주지 말자.
그래도 인간을 만들기를 잘 했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제발 노력좀 하자.
작가의 엉뚱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천국 주식회사'를 보노라니 이제 우리 인간들 정신을 재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든다.
새해는 이런 각오로 자신을 정화하는 한 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