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대 삼악산자락의 삼벌레고개, 산의 남쪽을 복개하면서 산복도로를 만들고 그 시멘트도로 주변으로 지어진

마을과 그 골목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오래전 자매가 빠져죽었다던 우물은 이제 마르고 돌로 채워져 버려졌고 그 우물집 안주인은 순분은 살짝 하자가

있는 난쟁이식모를 싼값에 알차게 부리는 재주외에도 집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세놓아먹는데다 동네여자들과 계를

모아 계주노릇을 한다.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우물집엔 무려 네 가구가 살았는데 화창한 오월의 어느 날,

우물집 바깓채의 방이 하나 비고 네 식구가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계약서에 썼던 필체가 화려한 새댁과 남편인 덕규, 그들 부부의 딸인 영과 원이 우물집으로 이사를 오고 순분의 둘째아들인 은철과

새댁의 둘째딸인 원은 작은 스파이놀이에 빠진다. 일단 동네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약을 만들어 복수를 하고 모든 사실은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동네사람들의 이름과 각각의 사연들이 알려진다. 이북이 고향인 새댁은 과거 교사직에 있었다는 것만 알려져있고

덕규가 경락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알려졌을 뿐 그들의 진짜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동네 똘마니역할에 신이난 순분네의 큰아들 금철은 아이들앞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급기야 은철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영원히 장애인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원이의 아버지 덕규마저 의문의 사내들에게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평화로웠다기보다는 부산스럽던 우물집은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빨갱이로 잡혀간 덕규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은철의 사고와 새댁네의 불행은 그 시대의 비극을 그대로 반영한다.

삼벌레고개는 그 시대의 인간의 계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 중턱의 서민들과 산아래의 저택들, 그리고 땅보다는 똥이 더

많이 보인다는 우물집근처의 사람들의 군상에서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덕규가 잡혀가던 날, 의문의 사내들이 타고온 검은 세단에 긁혀진 똥자욱을 보고 덕규는 삼벌레중턱의 소년들의 담대와 용의주도함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고작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이런 사소한 반항일 뿐이었다는 게 가슴아프다.

덕규의 죄명이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고 단지 이데올로기적 이단자인 '빨갱이'나 '간첩'으로 묘사되어었지만 분명 그 시대의 이단자 혹은

배신자의 낙인으로 지목된다. 아마도 그 시절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같다. 너무도 급히 사형시킬 수 밖에 없었던 그 사건.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지켜보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시선들이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인 것같다.

 

깔끔하고 엽렵했던 새댁의 몰락, 빨갱이 가족이라고 몰아부치는 이웃들, 그리고 그 이웃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덕규의 큰딸 영이,

입을 닫아버린 호기심소녀 은...나는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인가.

 

후일 그 단죄가 잘못임을 나라가 인정하였지만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네. 미안해'하기엔 돌이키지 못하는

댓가가 너무크건만 곁에서 손가락질 하던 이웃들은 그 후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기억할까.

얼핏 '마당 깊은 집'같은 아기자기한 소시민들의 이야기처럼 따뜻했던 일상들이 비극으로 끝나는 장면이 가슴아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이 그 후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단죄의 오류가 치욕스럽다.

여린 작가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을 시간들이 겹쳐진다.

마치 무병을 앓듯 그녀 역시 이렇게 살풀이굿을 하지 않으면 못견딜 시간들을 견뎠을 것이다. 그녀의 굿판으로 새댁 가족의 한이

풀어졌기를 바랄 뿐, 그저 나도 구경꾼이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무심코 읽었던 책에서 비수처럼 번뜩이는 진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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