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세상 모든 사물에는 나름의 향기가 존재한다. 때로는 그 향기가 삶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향기는 어린 시절 한가한 일요일 아침 엄마가 끓이시던 동태찌개냄새였다.

그 향기에는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생선을 다듬고 맛있는 음식을 하는 엄마의 사랑과 느긋한 어린시절의 나태와

평화로움이 들어있다.

  

 

이 책은 작가 클로델의 삶속에 녹아있는 향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향기가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불어로 '향기'를 뜻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향기는 사람이 맡을 수 있는 온갖 사물에 대한 냄새의 의미이다.

심지어 병원에서 맡을 수 있는 수프의 냄새나 교도소에의 습하고 검은 냄새, 즉 감금이나 유폐의 냄새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면 손수 훈제로 만들어주던 베이컨의 냄새와 밭에서 뿌리던 두엄더미의 냄새와 지하 샤워실에서

면도후 바르던 에프터셰이브의 냄새가 느껴진다고 했다.

작가가 살던 보주지방에는 훈제 베이컨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에 얽힌 농담이 재미있다.

"염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난 베이컨이 제일 좋아!" 이런 엄마 아빠 보다 더 좋은 베이컨의 맛을 볼 날이 있으려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의 옛집에서는 더 이상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 다만 집을 덥히던 석탄의 그을림 냄새와 목공일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처음 수음을 하던 자신의 어린시절의 추억이 존재한다.

'더는 어떤 냄새도 맡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거기, 추운 집, 페터 슐레밀이 자기 그림자를 잃어버린 것처럽 향기를 잃어버린 집 안에

있다는 것도 슬프다.' -163p

사물에게서 향기가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일일까.

 

그의 삶에서 기억하는 향기 곧 냄새는 인생 그 자체이고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나에게도 이런 향기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향기가 스며있을까. 하나의 존재로서 나를 특정하는 향기가 분명

있을터인데 스스로는 맡을 수 없는 나의 향기가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도 어디선가 수없이 많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운다. 아침에 요리해놓은 카레의 냄새가 진동하는 집, 이제 일어난 아들녀석은 그 냄새에

베어있는 나의 사랑을 기억해 줄 것인가. 세월이 흘러 녀석이 나를 떠올리면서 어떤 향기를 끄집어낼지 조금은 걱정스럽다.

제발 좋은 향기였으면 좋으련만. 인생에 베인 향에 관한 독특한 산문집에서 가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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