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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인연 -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정준기 지음 / 꿈꿀자유 / 2014년 9월
평점 :
전업작가도 아닌 분이 벌써 책을 세 권이나 내고 이번에 '참 좋은 인연'이란 타이틀로 네 번째 책을 냈다.
하긴 소소한 수필집 정도나 여행기 정도는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분의 글은 그저 소소한 정도가 아니다.
어찌보면 과학을 다루는 섬세한 직종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가능할 것도 같지만 감성만큼은 과학자의 지성을 넘어선 것이었다.

물론 저자가 인연을 맺은 분들 중에는 의사이면서 혹은 경제학자이면서도 책을 낼만큼 감성적이고 능력있는 분들도 있긴했다.
그리고 저자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되고 평생 변하지 않는 소신으로 살게 된 것도 사실 그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광수의 '사랑'이었다니
그와 책과의 인연은 확실히 남다르긴 하다.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데 저자가 만난 분들은 도대체 전생에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자신의 시상식을 위하여 멀리 독일에서 건너와 피아노 연주까지 해주었던 피아니스트의 인연은 20여년 전 독일의 하숙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냥 같은 하숙집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그녀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이어옴으로써 마치 오빠같은 사이가 되었고 이렇듯 먼 길을 건너와 멋진 수상곡을
연주해주었던 것이다.

누군들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없을까마는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프러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라는 시에 얽힌
일화를 보면 그의 아련하면서도 풋풋한 첫사랑에 이어 마지막 귀절인 '잠자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만 한다'를 자신의 남은 삶을
부지런히
한발자욱씩 움직여 죽는순간까지 소명을 다하겠노라는 의지의 다짐이 감동스럽다.
하긴 구구절절 따뜻한 이 수필집에서 그의 품성과 소신과 아름다운 인연들을 보면서 그가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다 갈지 짐작이 된다.
하다못해 어린시절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분들과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사는 걸 보면 그가 자신의 인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게된다. 심지어 거의 본적이 없는 감명깊에 읽었던 책이나 저자들까지도 그는 소중한 인연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직은 생소했던 핵의학분야에서 남다른 열정으로 노력해온 그의 과학자적 자세에도 존경심이 일어난다.
물론 그를 이끌었던 고(故)고창순 박사의 멘티도 그를 이자리에 있게 했을 것이다. 오래전 우연히 스승이 자신을 '금싸라기'같은
제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 자신을 금싸라기처럼 여기고 있는데 하찮은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그에게는 너무나 좋은 인연들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역시 그 분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다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내의 음식이라며 은근 추켜올리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팔불출의 모양이긴 하나 그 역시
감동스럽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맺은 인연들과의 따뜻한 교류가 아름다웠고 또한 그의 박식함에 놀랐다.
역사며 경제 세상을 보는 직관까지, 아마도 그가 이런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에는 얼마나 많은 책과의 인연이 있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평생 노력하고 나누고 소통하는 그의 삶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앞으로 그의 또다른 작품에는 어떤 따뜻함이 실릴지 다음작을 기대해본다.
작가 정준기의 작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