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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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바다를 느끼지 못할거면 바다에 오지말라'고 일갈하던 바다의 작가, 섬의 작가 한창훈의 바다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9년에는 지독한 태풍 '사라호'가 전국을 할퀴고 지나갔다. 얼마나 지독하였는지 몸소
'사라호'를 겪었던 엄마는 지금도 선풍기 바람을 멀리할 정도이다.
그 '사라호'를 정면에서 맞았을 거문도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팔경호'이야기가 있단다.
당시에는 정기 여객선도 없던 시절, 거문도 주민들은 육지를 오가기 위해 십시일반 출자하여 '팔경호'를 진수했다.
'사라호'가 우리나라를 강타할 무렵은 하필이면 추석명절인지라 그동안 모아둔 어물을 육지로 가져가고 대신 쌀과
과일, 육고기 등속을 사가지고 오기 위해 출항을 한다.
선원 열 명은 섬의 반년간의 수확을 싣고 태풍이 올라온다는 사실에 어두운 얼굴로 바다로 나섰던 것이다.
섬의 끄트머리인 녹산등대를 벗어나자 엄청난 파도가 몰려왔고 천신만고 끝에 고흥 녹동항까지 갔다.
급하게 시장을 보고 다시 배를 돌려 거문도로 향하던 팔경호는 배를 버리고 청산도로 들어갈 것인지 배를 지키기 위해
거문도로 향해야할지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들 목숨이 안 아까울까.
하지만 섬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팔경호를 지키기 위해 선원들은 깡술을 들이키고 태풍과 맞장을 뜨기로 한다.
태풍이 무지막지하게 섬을 할퀴고 간 후 주민들은 당연히 팔경호가 바다속으로 가라앉았을거라고 낙담을 한다.
과연 그 팔경호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섬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일단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안주가 좋고 맘먹고 돌자고 보면 고작 하루면 끝나는 우물같은
섬에 갇혀있다보니 유일한 낙이 술뿐이다. 밥상을 받는 횟수 못지 않게 술상을 받았을 술 좋아하는 작가의 섬살이는 얼핏 달력에
그려진 풍경화처럼 고즈넉해 보인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섬안에도 무수한 인생의 이야기가 지천이다.
섬살이가 지긋지긋해서 떠나버린 여자들이 많다보니 홀아비가 지천인 것도 술과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다 중년 남자들의 싸우는 소리를 듣던 중 욕이란 욕은 죄다 섭렵을 하다 마지막 나온 한마디에 상대는
KO패! "좆까지 마 씨발놈아, 각시도 없는 새끼가." 아 얼마나 가슴쓰린 욕이란 말인가.
내 일찌기 싸움에서 먼저 피를 본 놈이 지는 거란 소리는 들었지만 각시 없는 놈이 진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작가 또한 이 '지는 그룹'에 속해있으니 어떤 싸움이든 휘말려 들어봐야 승부는 뻔한 일이 아닌가. 오호 통재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못지 않은 섬과 바다의 풍요한 자산을 소개했던 전작인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에 비해 술상은 조금 빈약해 보인다.
2005년 컨테이선 하이웨이호를 탄 여행기와 2013년 쇄빙연구선 아라곤호의 탑승기가 이채롭다.
섬에서 자란 사람이라 그런가 유독 바다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 가도 가도 물뿐인 바다라 지구가 아닌 '수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어마어마한 바다에 서면, 그것도 장장 한 달 이상이라면 바다는 더 이상 동경이 아닌 고독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고래를 보고 싶어 북극의 바다를 향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만남은 무산되었던 듯..심지어 월급없는 간호사와 연구원 보조로
활약(?)했다는 탑승기가 재미있다.

당원과 소금과 미원 범벅의 쥐치맛에 익숙한 여자에게 날 쥐치의 참맛을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떤 목걸이-쥐치'는
작가만의 색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다. 사내들에게 술을 따르며 살아가는 여자의 아픈 추억과 싱거운 쥐치맛에 어우러지는 풍경이
쓸쓸하다. 섬이란 워낙 절대고독을 마주해야 하는 곳이라 그런가 그의 글들은 늘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과거의 행적역시 남다르기도 하고. 그가 가졌던 다양한 직업들은 그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밑천이 되지 않았을까싶다.

올 한해 유독 바다로 달려가 소주 마시며 울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바다가 무슨 죄라고...인간들은 바다에게 탄식을 토하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은근히 바다로, 섬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그의 글로
바다의 갈증을 달래도 좋겠다. 허리도 부실한 작가가 온몸으로 닻을 올리는 장면이 보고 싶다면 섬으로 가자.
흰머리를 휘날리며 섬을 서성이는 그를 알아보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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