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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고 싶어
클레어 메수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여자 나이 마흔에 이르면 젊음과 이별하는 아쉬움외에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서글퍼진다.
예를 들면 한 눈에 불꽃이 튀기는 사랑이라든가,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무력함,
싱글이라한다면 더 이상 결혼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 출산이 가능해지지 않을 것 같은 초조함등등..
케임브리지의 초등학교 교사 노라 엘드리지는 어느 날 자신의 클래스로 전학온 레자라는 소년을 보고 한 눈에
반하고 만다. 크고 깊은 회색 눈동자와 올리브색 피부, 사려깊은 행동등...자신이 가르쳐온 망나니 아이들과는
다른 품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레자는 얼마전 슈퍼마켓에서 마주쳤던 소년이기도 했었다.
레자에 대한 노라의 관심은 그의 부모인 시레나와 스칸다르에게로까지 넓혀진다.
이탈리아인이면서 설치미술가인 레자의 어머니 시레나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불안함을 드러낸 채 묘하게 노라의 모성을
자극해온다. 자유분망한 예술가였지만 이국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잠시 혼란을 느끼던 시레나에게 노라는 레자의 담임선생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친자매이상의 애정을 느끼고 그녀의 예술활동을 돕게된다.
노라역시 어린 시절 예술가가 꿈이었었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의 길보다는 현실적인 세계에 우뚝 서라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전 전신이 굳어져가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는 그녀에게 예술가적 재능을 물려주었고 언젠가는 꼭 그 꿈을 이루라는
숙제를 남겼었다. 그래서였을까. 노라는 시레나와 함께 작업실로 쓸 스튜디어로 함께 얻게되고 둘만의 공간에서 예술의 교감과
더불어 묘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게 된다.
시레나의 남편인 스칸다르는 레바논출신의 지성인으로 노라에게 강렬한 성적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마흔 둘, 자신의 열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든 '위층여자'노라는 레자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위험한 사랑을 투영한다. 레자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아이의 모습으로 시레나에게는 성취하지 못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스칸다르에게는
아직은 뜨거운 성적인 욕망을...
이제 노라의 생활은 시레나의 가족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가끔 레자의 베리비시터로 시레나의 예술파트너로 스칸다르와는 산책을 통한 감정의 교류로 그동안 결핍되었던 것들을 채우게 된다.
그러던 중 시레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고 심한 상실감에 1년의 휴직을 신청한 노라는 시레나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과연 노라가 열망하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몇 번의 사랑을 거치긴 했지만 진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마흔 둘의 여자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시레나가족의 등장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삶의 등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는 듯한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었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노라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배신감이다.
파리의 시레나의 전시실에 걸려있던 자신의 낯부끄러운 사진이 몇 년동안 열망했던 사랑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제는 되돌이킬수 없는 시간들.
거짓을 삶을 살고 있을 때 다가왔던 사랑 역시 거짓이었던가.
노라는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노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오랜 망상같은 사랑에서 깨어난 노라는 자신의 인생의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늘 모범생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다가온 싸구려보석같은 사랑이 그녀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외로움이란 이렇게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도둑같은 감정들에게 곁을 내어주게 된다.
시레나의 가족이 계획적으로 노라에게 상처를 주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노라의 사랑과 저울질을 하자면 절대 따라오지 못할 천박한 감정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좀더 견고한 삶을 위한 과정이었노라고 다시 힘을 내는 노라의 마지막 모습이 멋지다.
'그리고 그 분노 덕택에 난 드디어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엄마의 분노까지 끌어안고서-얼마든지 씨팔, 멋들어지게 살다
죽을 수 있어!' 그러니 두고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