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독일이 아직 통일되기 직전인 그 여름 곧 열 일곱살이 될 소녀 마리아의 여름은 뜨겁기만 하다.
DDR(통일전 동독)의 시골에서 자란 마리아는 40여분 떨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나와
브렌델 농장에서 묵고 있다. 소련으로 떠난 아빠는 열 아홉살 먹었다는 소련여자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버려진 엄마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자 아무 하는 일 없이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10학년인 마리아는 학교가는 일도 시들하고 12학년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브렌델 농장의 주인이면서 요하네스의 아버지 지크프리트와 그의 아내 마리안네는 농장일을 하고 가게일을 하느라
바쁘고 할머니 프리다는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거든다. 그리고 조금은 알 수 없는 인물인 머슴 알프레드가 있다.
할머니보다 세 살 아래인 알프레드는 바로 이 농장의 일꾼사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농장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어려서는 프리다가 남동생처럼 업어 키웠고 오래전 프리다가 결혼을 할 무렵 잠깐 행방불명이 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사랑하던 프리다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가출을 했었던 것이라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결혼 5개월여 후 태어난 큰 아들 폴커가 사실은 알프레드의 아들일 것이란 
소문과 함께. 둘째 아들인 하루트무트는 통일전에 사상범으로 지명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서독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겉보기에 브란델농장은 일거리가 넘치지만 부지런한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브란델농장에 손님처럼 느껴지는 마리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손에 끼고 한가롭고 다소 게으른 일상을
보내는 소녀였다. 이웃 헤너농장의 헤너를 알기전까지는.
헤너는 마흔 살의 남자로 술주정뱅이로 소문이 나있다. 마리안네의 가게에 와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간혹 보긴 했지만 그가
마리아의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전혀 짐작되지 못했다.
마리와의 엄마와 마리아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브란델 농장으로 돌아오던 중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헤너가 모녀를 도와주게 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헤너는 마리아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마리아를 가지고 만다.
이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었던 마리아가 왜 헤너를 거절하지 않았는지 명확치 않다.
소녀다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돌적이고 무서운 힘으로 달려드는 우직한 남자의 힘에 굴복되었던 것일까.
그 날 이후 마리아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헤너에게 빼앗기고 만다.

졸업을 앞두고 사진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사진에 빠져버린 요하네스는 마리아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다만 몰래 헤너의 농장을 드나드는 것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알프레드의 음험한 시선이 느껴질 뿐이다.
브란넬 농장에서는 소녀로 헤너의 농장에서는 여인으로 이중적인 생활을 즐기는 마리아.
잠시 헤네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처럼 보이면 슬픔에 빠지고 안달을 하는 마리아. 과연 이런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이중생활에 지친 마리아는 헤너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살자고 한다.
하지만 헤너는 말한다. "정말 외로워본 적 있니...너한테는 아무도 없을 거야. 아무도! 오직 나밖에 없을거야!"




딸또래밖에 안되는 마리아와 잠자리를 하고 사랑을 느꼈던 헤너가 왜 마리아를 밀어내려 했을까.
뒤늦게 어린 소녀의 삶에 뛰어든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마리아가 늘 곁에 두고 아껴읽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헤너와 마리아의 축복받지 못할 사랑이 묘하게 교차된다.
누구에겐가는 사랑이고 누구에겐가는 놀음처럼 보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우리 몫이다.
통일을 목전에 둔 동독의 사람들이 새로운 문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꿈틀거리듯 일어나는 희망이 섞여있는 불안정한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완전한 가정에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마리아를 휘어잡은 것은 뜨거운 몸의 소통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사내에게 모성을 나누어주고 ,자신의 부모는 가지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꾸며 함께 온기를 나누고 싶었던
절실한 외로움이 마리아를 헤너에게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다행한 것은 헤너가 마리아에게 마지막으로 나이다운 삶을 살도록 되돌려보내준 것이다.
마리아는 또래의 남자 요하네스와 통일된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여름 마리아의 뜨거웠던 사랑은 그녀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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