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좀 알거나 알고 싶거나 하는
사람이 제격이다. 말하자면 시야가 좀 넓은 사람이라면 속도감있게 읽히는 책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면 읽는게 결코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을 알건 모르건 일단 유쾌한 이야기에 웃음은 보너스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더구나 올해는 사건 사고도 많고 태풍도 잦고 사는 게 별로 신나지 않은 해이니까 전작 '담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었던 사람은 물론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좀 웃어보자 싶으면 얼른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이야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소웨토의 공중 변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1960년대 남아공에서는 집집마다 변소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중 변소를 이용했던 것 같다.
우리의 오래전 화장실처럼 푸세식화장실인데 그곳을 관리하는 소장과 수거인들 사이에 조수로 일하고 있던 열 네살의 소녀
놈베코가 주인공이다. 비록 나이가 좀 어리게 보이긴 하지만 위생국 직원에게 눈밖에 난 전임 소장에 이어 다섯 살부터 분뇨
수거일을 했던 놈베코가 새로운 관리소장으로 지명된다.
공중 변소에서 자신을 성추행하려던(이건 놈베코의 주장이다)타보라는 사내를 만나 책을 읽는 법을 배우고 그녀의 속에 잠재되어
있던 수학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놈베코는 요하네스버그의 시내에 나갔다가 엔지니어의 차에 치에게 되고 어이없게도 도리어 그의 하녀로 빚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사실 엔지니어는 남아공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핵개발 연구소의 책임자였고 부친의 명성으로 얻게 된 점수로 대학을
졸업한 멍청이였다. 나치즘에 빠져 있던 남아공의 수상은 엔지니어를 닥달하여 핵을 개발하려 하지만 워낙 멍청하고 알콜중독자인 엔지니어는 단순한 수학공식도 외우지 못하는 무늬만 엔지니어였던 것이다. 
놈베코는 자신의 뛰어난 수학실력과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엔지니어를 도와 핵폭탄 제조에 일조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엔지니어의 집에서 하녀노릇만 할 수는 없는 법. 탈출을 하기위해 같이 하녀노릇을 하는 중국의 세자매을 이용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남아공에서 암약하고 있는 모사드는 핵폭탄이 제조되자마자 엔지니어를 살해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베코는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향하는 비행기티켓과 핵폭탄을 교환하자는 조건을 미끼로 남아공을 탈출한다.
사실 모사드요원들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는 척하고 살해하려고 했지만 이를 눈치챈 놈베코의 기지로 탈출은 물론 모사드 요원에게 한방 먹이고 만다.

스웨덴에 도착한 놈베코의 활약은 눈부시다. 핵폭탄을 쫓는 모사드 요원과의 숨바꼭질은 물론 나중에 그녀의 연인이 되는 홀예르와의 만남, 중국의 후진타오와 스웨덴의 국왕은 물론 수상까지 남다른 인맥을 과시하게 된다. 물론 자의가 아닌 경우가 더 많긴했지만.
그 와중에 홀예르의 아버지가 레닌의 동상을 스웨덴국왕의 동상으로 변조한 후 막판에 깔려죽는 장면에서는 비극이지만 웃음이 터져나온다. 작가의 촌철살인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깔려죽은 잉마르는 평생을 국왕반대주의자였는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변조한 국왕의 동상에 깔려죽다니...'카렐리아 화강암으로 만든 국왕의 동상에 깔려 죽어 기나긴 투쟁도 끝이었다. 게임은 무승부였다.'

작가의 모국인 스웨덴은 중립국인데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모범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넘어온 까막눈이 여자
놈베코 덕분에 스웨덴은 자신도 모르게 핵보유국이 되고 만다. 그것도 20년이 넘게 말이다. -어쩌면 소설이 아니라 진실일런지도 모를일-
이스라엘로 가야할 3메가톤급 핵폭탄과 스웨덴으로 가야할 10kg의 영양육포가 바뀌는 바람에 일어나는 헤프닝은 전세계의 핵 현실과
서로의 이익이 교차하는 외교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막판에 이스라엘의 외상이 핵폭탄을 암시하는 '10kg의 영양 육포'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 장면 역시 폭소가 터진다.
우연인지 요즘 전세계를 분노케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따른 피의 참상을 보면서 전세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노리는 모사드의
본산인 이스라엘의 존재자체가 신의 뜻인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비록 작품에서는 냉혈해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수 투성이의 덜 떨어진 모사드요원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라면 10kg의 영양 육표 대신 
분노에 찬 지구인들의 항의서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니 말이다.
비극적인 죽음조차 유쾌한 죽음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위트에 더위를 잊게 된다.
더구나 제법 오래전부터의 세계사를 줄줄 알게되었으니 전작처럼 고맙지 않은가 말이다.
도대체 요나스 요나손은 언제 이 많은 정보들을 꿰뚫고 있는 것인지 그의 독서량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 주인공 놈베코가 작가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면서 어느새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