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 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일단 작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수상작들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음으로 나는 안심하고 책을 연다.
책을 덮는 순간 느꼈던 것은 박범신작가의 추천사처럼 '물샐틈 없는 꼼꼼한 바느질 솜씨'가 연상되었다.
가끔은 삐뚤빼뚤 할법도 하건만 한 땀 한 땀 간격도 정확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한 바느질이 떠올랐다.
기계로 일목요연하게 박음질된 그런 바느질에서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냄새가 쏙쏙 박힌 그런 배열들말이다.



제목처럼 작가는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을 겪으며 느꼈던 상실의 아픔들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든 대충 그 출현은 짐작할 수 있지만 가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물론 시한부 삶이라면 대략 짐작이야 하겠지만. 어느 날 자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면 너무도 기가막혀 아주 한참동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역시 막내동생의 죽음이 그러했으니까.
아무 예고도 없이 닥친 죽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확정지어야 할 것인지 심리적인 공황에 빠지게 된다.
교회 권사였던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결혼후 호주로 이민간 언니는 카톨릭신자가 되었고 자신은 불교도인 버라이어티한 가족의 종교관에맞춰 어떤 예법으로 장례식을 치러야하는지에 대한 혼란과 예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 장례식의 의미까지 하나의 죽음에는 엄청난 시간과 역사와 의식과 의미까지 더해져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가 살아온 시간들과 군인으로 평생직업을 마무리하고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누리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병마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숙제가 남은 자식들의 이야기는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펙트가 느껴진다.
누구나 부모는 있으니까 언젠가 분명히 우리에게도 다가오거나 이미 겪었을 일들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망자를 보내야하는 과정을 그래도 작가는 꽤 이성적인 시각으로 지켜보았던 것같다.
고집불통에 타협하기 힘든 아버지를 달래고 윽박질러 엄마가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도 참 지난하다.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언니와 이쁜 막내자리를 꿰찬 두 자매와는 달리 자기밥 찾아먹기 바빴던 둘째 딸이었기 때문에 더 단단해졌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둘째들은 대개 이런 성품을 지닌 것을 보면.



자칫 방관자나 단단한 이성자처럼 보일지도 모를 위치에서 때로는 아플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제 몫 이상 역할을 잘 해냈다.
그러면서 담담히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과 부모님과의 시간들. 아버지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마치 내일처럼 다가온다.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에게 당했던 치욕스런 일들을 보면서 문득 나에게도 그런 치졸한 선생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지금은 교단을 떠나 어디선가 늙어가고 있을지 아님 벌써 세상을 떠났을지 모르지만 늙어가는 있는 뇌에서도 절대 늙어지지 않는 기억을
가지게 된 아픔을 놈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혹시 그가 자신의 실수와 비인간적인 태도를 지적했던 제자의 글을 보게 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나마 여고시절 길에서 만난 선생앞에서 침을 뱉고 돌아섰다는 장면에서 조금 위안이 된다. 바보같은 놈.
그런 놈들이 여전히 세월이 흘러도 어디선가 교단에 서있을 것이란 사실이 분노스럽다.

작가는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다간 엄마역시 언젠가 모두에게서 잊혀지겠지만 그 죽음에는 수많은 시간과 역사와 사랑과 아픔들이 내재해
있음을 되살렸다. 그래서 평범치 않은 죽음으로 승화시킨 노력이 참 이쁘다.
막힘없이 써내려간 것처럼 편하게 다가왔던 이 글이 1년 넘게 5천장이 넘는 글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니 갑자기 책이 묵직해지는 느낌이다.
하긴 65년의 삶과 70이 훨씬 넘은 시간과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들이 교차된 무게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늘 으르렁 대는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의 마지막이 인간답기를 바라는 딸자식의 기원이 느껴져 그것도 이쁘다.
이 글이 쓰여질 수 있게 된 것은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이었지만 어쩌면 엄마의 마지막 선물같은 작품으로 탄생되었으니 천당에서 엄마는
행복하겠다. 늘 뜨뜨미지근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이 수상으로 뜨거워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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