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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TV 닥치고 진실
정규재 지음 / 베가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신문구독을 끊고 웬만한 뉴스는 TV나 인터넷을 보는 것으로 대충대충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아침부터 신문의 모든 면을 꼼꼼히 훑어보던 열정이 사라진 것은 '진짜'를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신문들조차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나서는 누구의 주장이 진짜인지 활자화된
기사들조차 진위를 가려내는 일이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슬그머니 촉수가 무뎌지고 게을러진 것도 이유가 아니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쨋든
슬쩍 발을 빼고 멀리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한 척 했던 내가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진실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은 이런 팩트가 존재했구나 싶어 그동안 무심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넘치는 언론과 SNS의 범람으로 비밀이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겠구나 싶었는데 여전히 어떤 것들은 왜곡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 왜곡을 진실처럼 떠들고 있거나 자신의 무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대중을 선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정욱교수와의 대담에서 정의되었던 386세대의 전형인 나로서는 진보쪽보다는 보수쪽에 선 사람이다. 독재의 몰락을 지켜보며
환호했지만 독재자의 업적에 대해서는 폄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정권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100%동감한다. 어쨋든 박정희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밥만 먹고 어찌 사냐'를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게 해준 사람이라는 진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비극이라고 일컫는 6.25가 재앙으로 위장된 축복이라는 조갑제 칼럼니스트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꽤 위험한
발언이겠다는 우려와 함께 실제로 독립운동을 경험한 수많은 국가가 공산화되었지만 6.25의 참상으로 공산주의의 실체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선택되지 못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실 우리가 공산주의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명제였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많은 멘토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들이 환영을 받았었다.
어쨋든 쓴소리보다는 달콤한 소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사실이다. 가뜩이나 의존적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들에게 망치로
두들겨 단단해지는 칼을 만들어주는 일이 옳은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일이 옳은지는 정의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질풍의 시간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내 세대에서 보면 반드시 당근이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만큼이나 일구어 놓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덩치만 커진 아이들이 잘 이끌고 나갈만큼 잘 벼려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끝난 월드컵축구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가끔은 오심때문에 뭇매를 버는 심판들을 모아서 경기를 하게 한다면 정말 원칙대로
정확한 경기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반드시 축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기를 관장하는 심판이나 비리를 잡아내는 감사들이
막상 자신들이 필드로 나간다면 스스로에게 그린카드를 내밀 수 있겠냐는 다소 우스꽝스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존재했었는지도 모를 AGC(그레인 컴퍼니)라는 회사의 몰락을 보면서 저자가 짚어낸 '공무원은 법과 윤리적 행동을 따라
규칙을 만드는 자이지,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활동을 하는 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무릎을 친다.
그동안 우리는 공기업의 나태함과 방만한 운영을 수없이 목격해왔었다. 굳이 앞치마를 두르고 시장판에 나가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심지어 그 장사꾼들이 뭔가 제대로 하는지 세금은 꼬박꼬박 잘 내는지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무슨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심판이 경기를 잘 해내는 것은 거의 본적이 없고, 다만 심판의 위치나 제대로 잘 지켰으면 좋겠다.
철도파업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답답함을 속시원하게 풀어놓은 것이나 독일통일의 문제점을 과도하게 부풀림으로써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양상하는 문제며, 엉터리 통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 속시원한 얘기가 끝이 없다.
정규재TV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로서는 아주 괜찮은 멘토하나를 제대로 얻은 셈이다.
봐도 보이지 않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맹과니같은 사람들에게 '닥치고 진실'을 좀 알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모난 돌이 정을 맞을지언정 할 말은 해야겠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그의 목소리에 앞으로 귀를 바짝 들이대야 할 것같다.
적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진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어려운 듯한 경제용어가 힘들긴 했지만 참으로 속시원하고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화끈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