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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어른도 아닌 것이 아이도 아닌 것이 마치 털뽑힌 중닭처럼 어중간한 시간에 서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범은 오토바이절도사건에 휘말려 퇴학이냐 전학이냐 갈림길에서 전학을 택했고 인천의 형설중으로 또 전학을 한다.
전학을 밥먹듯하는 도범에게 이런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전학생을 보는 차가운 시선이 싫다.
어떤 녀석인지 간보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기마련인지라 툭툭 건드리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형설중 사서교사로 부임한 수인은 100년이 넘은 도서관건물앞에서 기가 질리고 만다.
숲속에 둘러쌓인 괴괴한 목조건물에 우중충한 기운이 서린 도서관은 한낮에도 들어가기 싫을만큼 어둡고 싸늘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학교답게 장서가 많긴 했지만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오기 싫을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싫다.
수인의 독서회에 모인 아이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배당된 아이들이 거의 다 였다.
오로지 책을 좋아한다는 이담이와 혹시나 음침한 도서실에서 개기면 좋을 것같아 지원한 도범이와 새를 닮은 세호, 덩치가 산만하고
늘 책가방에 해머를 들고 다니는 해명이가 그나마 자발적으로 지원한 아이들이다.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은 수인에게 대놓고 괜히 왔다고 투덜거리고 말대답으로 질리게 만든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거의 이런 지경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전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애정을 가지고 독서지도를 할 수 있을까.
수인은 오래사귄 남자친구 율이 결혼얘기를 꺼내기는 커녕 잘다니는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유학을 떠나겠다고 하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충격에 빠진다. 도대체 야망을 위해 멈출줄을 모르는 남자를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수인이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율은 벌써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인곁을 떠나고 만다.
어린시절 아빠를 잃고 홀어머니밑에서 혹시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불안한 유년을 보냈던 수인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안이 유년에서 비롯되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같은 상처를 지닌 도범이와의 대화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도발적인 아이들에게 햇살이 드는 따뜻한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수인은 교장에게 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꾸미고 싶다고
건의를 하게되고 동료교사들은 수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다만 엉뚱발랄하고 도무지 어떤 것에도 주눅들지 않는 괴상한
미술선생 양희순만 예외이다.
공항에서 미처 전화할틈도 없이 갑자기 출국하게 되었다는 문자만 보내고 떠나간 율과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춘기의 아이들.
수인은 외로움과 괴로움때문에 절망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엄마가 그리워 고향집으로 향한다.
"학교를 그만 둘까봐" 말하는 수인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애들이 을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라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막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겄냐." -216p
눈물이 왈칵 솟는 것만 같다. 그래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까 만날 가려운 거 였구나.
미치도록 가려운데 긁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면서도 나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마당에서 이리저리 ?i겨다니는 털빠진 중닭마냥 그렇게 외로웠을 아이들이 떠올랐다.
수인은 다시 아이들을 껴안는다. 어디에서도 긁어주는 사람없는 아이들의 가려움을 자신만이라도 알아줘야겠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심코 흘린 말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지 아이들은 비로소 상대를
존재로서 인정한다.'라는 소신으로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낡은 책을 거래하는 책방주인에게 온 만남의 메시지를 달력에 표시하면서 수인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본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주 오래전 책으로 인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 고백한 교장선생이 수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란
믿음도 함께.
전작인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처럼 작가는 어정쩡한 시간에 갇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놓지 않음을 보여준다.
밝고 따듯한 도서관을 선물하고픈 수인은 작가 자신의 모습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싶다는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있는 이 책이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한 때 '미치도록 가려운'시간을 지나던 아들녀석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한 에미가 너무 부끄러웠다.
결국 그 시간이 지나면 멋진 장닭이 되어 마당 한 가운데를 휘젓고 다닐 것임을 왜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지 회한이 밀려온다.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그리고 이제는 가렵다 못해 딱지가 않은 내 아이의 상처를 알게 해준 이 책이 너무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