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리어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32년에 걸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츠키 히로유키의 작품은

아쉽게도 그동안 읽어본 적이 없으나 그의 작품들이 연극이나 드라마가 되기도 했다니 필력이 대단한 작가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내가 만난 그의 첫 작품 <바람에 날리어>는 그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어린시절 우리나라로 건너와 자라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 과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제강점기 식민지였던 나라에 점령군처럼 머물렀다는 것인데 물론 선택권이 없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묘한 상실감이 느껴지긴 한다. 중학교 1학년때 평양에서 패전을 맞았다니..우리 입장에서는 승전이라고

해야하지만 자주적인 승전이 아니었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한 그 시절 사춘기의 그는 식민지의 나라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패전 후 북한에서 소련군 트럭을 매수해서 38선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던 장면은 영화를 보는 듯 머리끝이 쭈볏해진다.

점령군의 자손이긴 했지만 그에게도 목숨을 건 시간들이 존재했구나 싶다.

그런 그가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간 후 오히려 이방인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다소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오히려 자신을 추방한 식민지의 나라가 더욱 그리웠다는 것은 그의 기억속에 우리나라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평양에서의 추억과 소련의 고리키광장, 핀란드와 스웨덴같은 북구의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특히 스웨덴 여인들이 미인이었다는 회고는 그 역시 남성으로서 미인에 대한 관심이 꽤 있었던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전후 조국인 일본의 심각한 경제상황에서 책을 팔아가며 연명하고 그 와중에 사창가를 찾아 방황하던 모습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개방된 성문화와 더불의 그의 솔직한 일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등잔불을 밝히는 등유를 드럼채사서 쟁여두는 장면은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시절의 긴박함이 느껴지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면서 돈이 생기면 모아두지 않고 쓰게 되었다는 일화도 재미있다.

후에 그가 일본 문학계에 족적을 남기게 된 것은 그의 유별난 과거가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전쟁을 겪고 많은 나라를 전전하면서 그에게 스며든 기억들이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여든이 훌쩍 넘은 노작가의 시간들을 보면서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특히 전후 낙후된 경제를 일으키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편한 마음의 시간여행이었고 띠지의 그의 젊은 모습이 우리의 대작가 김홍신을 닮은 것도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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