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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2009년 8월의 어느 일요일 영국 웨일즈 지방의 드넓은 해안공원 안에 있는 외진 주차장에서 스완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바네사가 흔적도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행했던 남편 매튜와 애견 맥스는 잠시 산책중이었고 자동차 안에는 바네사의 소지품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범인은 어린시절 우연히 발견한 자신만의 동굴로 그녀를 납치한 후 숨구멍만 뚫어놓은 상자에 일주일치의 식량과 물만
넣고 그녀를 가둔채 떠나고 만다.
범인인 라이언은 불성실한 생활로 여러직업을 전전하면서 지독한 사채업자인 데몬으로 부터 빚을 얻었지만 제대로 상환을
하지 못해 거의 2만파운드에 달하는 빚에 쫓기다가 결국 납치극을 벌이게된 것이었다.
라이언은 몇 번의 절도와 상해전과가 있긴 했지만 사람을 죽일만큼 악랄한 사내는 아니었다.
빚을 갚기 위해 계획한 납치극도 사실 돈만 받으면 풀어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미처 몸값협상을 벌이기도 전에
예전에 술집에서 저질렀던 폭행죄로 구속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여자를 납치해 동굴에 가두어 놓았다는 고백을 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중처벌이 두려워 그 일을
비밀에 붙인 채 수감되고 만다. 그로 부터 2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라이언이 출소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감생활동안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라이언은 제소자와 결연을 맺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라의 보살핌을 받게된다.
노라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고립감에 빠진 물리치료사로 라이언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려 한다.
심지어 그가 출소하자 갈곳없는 라이언을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하면서 영원히 자신의 곁에 라이언을 묶어둘 수 있다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라이언은 수감전에 사귀던 데비를 잊지 못한다.
청소용역회사를 다니던 데비는 오랫동안 라이언을 사귀었지만 그의 불성실한 생활과 범죄를 용서하지 못했고 결국 헤어지기로
했지만 자신의 집에서 그대로 살게 해줄만큼 마음이 넓은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라이언이 출소한 어느 날 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심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오랜기간 연락이 끊겼던 라이언의 엄마 코린 역시 출근길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의부인 브래들리에게 연락을 받은 라이언은 데비와 엄마의 사건을 사채업자인 데몬이 벌였다고 생각한다.
한편 헬스케어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지나는 친구이며 편집장인 알렉시아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알렉시아는 네 명의 아이를 둔 엄마이지만 가장의 역할을 하고 그녀의 남편 켄은 선박제조회사의 엔지니어였지만 아내의
사회생활을 돕기위해 가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불황으로 잡지사의 사정이 좋지 않았고 잡지사의 회장은 알렉시아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지나는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에 충실한 알렉시아부부를 부러워했지만 몇 년 동안 계속된 스트레스와 빠듯한 살림살이에 지친
알렉시아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은 오래전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꾼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곁을 떠나 얼른 독립하는게 꿈이었지만 막상 살아온 과정을
보면 수많은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헤픈여자였다는 것이 자신을 더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8년이나 사귀었던 가렛은 재간이 뛰어난 이벤트기획자였지만 허세가 심했고 지나가 쉽게 몸과 마음을 주는 여자라고 떠벌이는 등
큰 상처를 주곤 했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고 지나는 혼자 남겨져 깊은 외로움에 빠지곤 했다.
알렉시아는 실종된 바네사와 오랜 친구로 홀로 남겨진 매튜를 지나에게 소개해주었지만 3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은 아내의
실종으로 삶의 활력을 잃은 매튜의 마음속에 지나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멋진 외모와 따뜻한 배려심을 지닌 지나의 진면목을 알게된 매튜는 오랫동안 요양원 생활을 하던 장모의 장례식에 지나와
동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바닷가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지나는 주말에 알렉시아의 부탁으로 헬스케어의 부진을 타파할 에세이집을 만들기 위한 사진을 찍어 주기로 했었다.
예상치 않게 매튜와 이틀을 보내게 된 지나는 알렉시아에게 양해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그 날 밤 알렉시아의 남편인 켄에게
전화를 받게 된다. 혹시 지나가 자신을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울까봐 초조해진 알렉시아가 사진을 찍기위해 국립공원으로 향한 후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급히 알렉시아의 집으로 돌아온 매튜와 지나는 켄과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갔다는 말을 듣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위로했지만 결국 국립공원내에 주차장에서 알렉시아의 차가 발견되었고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3년전 사라져버린 친구 바네사와 똑같이 주차장에서 사라져버린 알렉시아.
경찰은 알렉시아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바네사의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데몬의 채무독촉에 겁에 질려있던 라이언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 결국 3년 전 사건을 노라에게 털어놓기로 한다.
이미 바네사를 납치한 범인은 라이언임이 밝혀져 있지만 혹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기대감.
그리고 알렉시아는 왜 사라졌을까 하는 또다른 사건의 한축이 맞물리면서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독일작가임에도 영국과 영국인을 작품의 배경과 인물로 설정한 샤를로테 링크는 영국의 음울한 분위기가 소설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씩 상처를 받고 어둔 기억에 묻혀 지내는 사람들의 내면과 심리를 잘 표현하면서도 스릴러의 매력을
기가막히게 뿜어내는 작품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깊은 상처는 잘 보지 못한다.
알렉시아와 켄의 위태스런 모습은 결국 비극을 불렀고 오랜 세월 위기를 견디던 이성이 탁 하고 끊어지는 순간 인간은 짐승으로
얼마든지 변한다는 이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까지 가기전에 누군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면..그리고 그 손을 상대방이
잡았다면 억울한 죽음들은 없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나역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자 오래전 자신이 등을 돌렸던 엄마를 떠올리고 혹시 자신이 엄마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죽음 직전에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떠올린다던가.
영화를 보는 듯 드라마틱하면서도 긴박한 스릴러의 매력이 담뿍 담긴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