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이름으로 2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에게는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사랑으로 앨마는 행복한 결혼을 꿈꾼다. 괴팍한 핸리마저 앰브로즈의

선함을 인정하고 결혼을 허락한다. 하지만 화이트에이커의 재산은 절대 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미 폐경을 지난 마흔 여덟이라는 나이로 결혼을 하게된 앨마였지만 그동안 자신이 꿈꾸었던 남녀의 결합에 대한

설레임으로 첫날밤을 맞게 된다. 하지만 앰브로즈는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를 한 후 잠이 들고 만다.

신혼 초야의 기대가 무너진 앨마는 혹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 절망에 빠지지만 무심한 앰브로즈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만 충만할 뿐 절대 결합할 생각이 없다.

몇 달 후 저녁 식사 전 목욕을 하겠다는 앰브로즈를 따라 목욕탕으로 향한 앨마는 알몸으로 앰브로즈에게 향한다.

혹시 그의 성기가 문제가 있나?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모습이었고 다만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 그녀를 밀어내게

된다. 모욕을 느낀 앨마는 당장 별채의 손님방으로 그를 쫓아내고 자신의 결혼이 시작도 하기전에 막을 내렸음을 깨닫는다.

 

앰브로즈는 육의 결합이 아닌 정신적인 결합에 더 의미를 두는 순수한 남자였다.

결혼 전 앨마를 잘 이해시켰다고 믿었던 앰브로즈는 앨마의 절망으로 상처받고 그녀의 지시대로 바닐라농장이 있는 타히티로

떠나게 된다. 앰브로즈를 만나 온통 세상이 장미빛이었던 때에 그녀의 에너지는 넘쳤고 학문은 빛을 발했었다.

하지만 사랑이 사라지고 그가 떠난 후 화이트에이커의 마굿간에 꾸며진 자신의 서재에 갇힌 앨마는 죽음과도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1851년 5월 타히티 마타바이만에서 37년 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프랜시스 웰스 목사로 부터 앰브로즈가 감염으로 숨을 거두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앨마는 깊은 충격에 빠졌고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로 부터 다섯 달 뒤 앨마는 아버지의 충실한 부하인 딕 얀시로부터 앰브로즈의 작고 낡은 가죽가방을 전달받게 된다.

그 가방속에는 앰브로즈가 남긴 그림들이 남아있었는데..뒷면에 내일 아침이라고 씌여진 나체 남자의 그림을 보고 경악한다.

앨마는 앰브로즈가 남색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 해 가을 제왕이었고 폭군이었던 핸리가 세상을 떠났다. 오래전 결혼으로 떠나간 양딸 프루던스와 한네커에게는 한 푼도

유산도 남기지 않은 채 모든 재산은 앨마에게 남겨졌다.

장례식이 끝난 후 오랜세월 화이트에이커를 진두지휘해왔던 한네커는 오랜 비밀을 앨마에게 전하게 된다.

프루던스가 왜 아무 연애감정도 없던 가정교사인 아서 딕슨과 결혼했는지...조지가 갑작스럽게 레타와 결혼했는지도.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줄 몰랐던 프루던스는 음탕한 생모의 아름다움을 물려받는 자신의 외모가 주목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어느 날 앨마가 조지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 하던 날 표정없이 듣고 있었던 프루던스는 사실 조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조지 역시 프루던스를 사랑하고 청혼했지만 프루던스는 앨마를 생각해서 거절하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판단을 믿어왔었고 모두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자신을 배려했던 일을 알게된 앨마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부가 온전히 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화이트에이커를 노예해방을

위해 헌신하던 프루던스에게 상속하고 앰브로즈의 유일한 유품인 가방속에 있던 그림의 비밀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다.

 

왜 앨마는 자신의 아버지인 핸리가 평생 쌓아두었던 부를 버린 채 자신을 배신하고 쫓겨난 앰브로즈의 그림에 집착했던 것일까.

아름다운 소년의 나체에서 남색의 기미를 찾아낸 앨마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믿었던 앰브로즈에게 무엇을 증명받고

싶었던 것일까. 태어나서 한 번도 화이트에이커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던 앨마가 원시의 타히티라니..

 

생각대로 타히티는 문명과는 정반대인 세상이었다. 모기와 도마뱀과 질병과 소통의 부재인 땅에서 앨마는 소년의 흔적을

찾기위해 애쓴다. 앰브로즈의 사망소식을 알렸던 웰스 목사는 기독교신앙의 고루함에서 벗어나 타히티만의 기독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그의 선교로 또다른 목사가 된 양아들중에 그림속의 남자가 있음을 알게된다.

타히티 전사의 전투를 이끌었던 웅변가의 아들이었던 '내일 아침'-본명의 어감이 tomorrow morning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

을 통해 앰브로즈의 죽음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세상에세 유일하게 자신을 여자로 사랑했던 앰브로즈의 사랑은 한 마디로 아카페적인 사랑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에로스를 배제한 교감을 이해하지 못했던 앨마는 깊은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어머니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향한다.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랐던 호르투스 식물원에는 외삼촌이 책임자로 있었다.

앨마는 처음 만난 데이스 삼촌에게 그동안의 논문을 건네며 식물원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끼를 연구하는 선태학자로서 앨마는 획기적인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논문에 감동한 삼촌은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의 논문을

출판하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앨마는 자신의 논문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녀가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같은 생물종이면서 진화와 도태를 반복한 인류가 왜 이기적인 생물들처럼 살아가지 않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었다. 프루던스와 앰브로즈가 그랬던 것처럼...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이타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답거나 뛰어나거나 독창적이거나 우아한 사람이 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는 이는 때로 가장 가차

없거나 운이 좋거나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변화를 감당하는 비법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삶의 시험을 견디는 것이었다.'-331p

 

'종의 기원에 관하여'를 쓴 다윈과 그와 같은 이론을 정립한 윌리스는 앨마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었다.

다만 다윈은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여 영웅이 되었고 다윈을 존경했던 윌리스는 그를 위해 논문을 포기했을 뿐이다.

앨마 역시 그 두사람이 영광을 차지하도록 자신의 논문을 영원히 묻게된다.

여성에게 학문이 금기시되던 시대..세상을 놀라게했던 대학자와 같은 반열에 서있었다는 것으로 그녀는 행복을 느꼈다.

 

이 소설은 아직 여성의 영역이 좁았던 시대 막대한 부와 부모의 정성으로 자신을 길을 찾았던 한 여성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꽃처럼 아름다워야만 주목받았던 시대에 못생긴 외모였지만 좀 더 아름다운 학문으로 자신을 드러냈던 앨마의 생을 통해 삶의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진정한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보다 아름다웠던 프루던스와 레타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었다.

이기적인 삶으로 살아남은 수많은 생물종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삶으로 생존경쟁에서 스러진 인간들을 대비하면서

펼쳐지는 스토리가 아주 이색적인 느낌이다. 자칫 지루할지도 모를 과학에 관한 저자의 안목에 탄복하게 된다.

앨마가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의 반바퀴를 도는 여정 또한 상당한 지식없이는 구현되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앰브로즈의 신비로운 난초화에 못지않은 삽화가 곁들여진 이 소설을 이틀만에 읽었을 만큼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심하지만 순수했던 사랑과 도덕이 강조된 시대에 꿈틀거리며 솟구치던 성적인 욕망들..

200여년 전의 세계정세를 꿰뚫어 풀어낸 여정또한 놀랍다. 저자는 상당한 과학적 지식을 탐구했을 것이다.

타히티 해변에서 포효했던 앨마처럼 저자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라는 책으로 자신을 입증했다.

성년을 맞은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던 민음사의 의도가 얼마나 적절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 감명깊은 소설이다.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내 딛는 여린 여성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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