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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쥘리 보니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5월
평점 :
2013년 프랑스 프낙 소설대상 수상작이라는 쥘리 보니의 소설은 프랑스문학의 전형적인 색이 돋보인 작품이다.
틀에 박힌 듯한 단아한 소설이 아니라 아스라히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걸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다.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기존작가들의 작품보다는 오래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려했던 전통적인 작가들의
분위기가 많이 녹아있었다.

소설속에 주인공 베아트리스는 평범한 교사인 부모밑에서 성장했지만 스스로 보헤미안이 되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처녀였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독일 남자 가보르를 만나 알몸으로 춤을 추는 순회공연을 하며
그의 아이를 낳고 집시처럼 떠돌며 살아간다.
바이올리스트와 게이 커플과 드럼 연주자로 이루어진 그들의 카라반은 마치 오래전 유럽을 떠돌던 집시를 연상케한다.
그들 역시 베아트리스처럼 자신의 광기를 숨기지 못하고 발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샤먼과 같은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나로서는 그들의 자유분망함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역마살운명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술과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고 기어이 에이즈까지 걸려 자살에 도달하는 장면은 거부감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또 세상 어디에선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니 받아들이는 수 밖에.

하지만 에이즈로 썩어가는 몸뚱이를 자살로 마감한 게이커플의 사고이후 순회공연팀은 분해가 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가 마련해준 집에 정착하게된 베아트리스와 가보르는 결국 헤어지고 만다.
야생을 떠돌아야 하는 맹수를 집안에 가두려고 했으니 가보르는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내와 아이들을 버려두고 달랑 바이올린 하나만 들고 떠나버린 가보르는 그 후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녀는 이제 가장이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간호보조사로 근무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광기를 숨긴 채 마치 죽어있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탄생이란 기적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산부인과 병동은 기쁨만 출렁거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산모들의 모습과 때로는 죽음으로 사라져버리는 아이들.

산부인과 의사인 밀은 아내와 헤어지고 병원의 모든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바람같은 남자였고 차가와 보이는
베아트리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고 있소.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자신의 삶이 다른 모든
이들의 삶보다 더중요할 수 밖에 없고. 나는 훗날 살인자, 실업자, 심지어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아이들한테 철저하게 휘둘리는
엄마들을 무수히 많이 보아왔소! 그런데 내가,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라니, 정말 웃기는 이야기가아니고 뭐란 말이오!"
사산한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엄마와 미쳐버린 여자가 누워있는 병동들.
쥐꼬리만한 월급을 위해 12시간을 뛰어다니며 이런 전쟁같은 병동을 누비며 베아트리스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알몸으로 온 세상을 느끼며 자유로이 춤을 추웠던 기억은 그녀의 희망이고 탈출구였다.
사산한 아이에 대한 충격으로 오랫동안 병동에 누워있는 2호실 여자의 손을 잡고 그녀는 잠이 든다.
건너편 병동에는 2호실 여자의 전남편이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기 위해 와있고 분노한 베아트리스는 불쌍한
2호실 여자가 결국 저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마지막을 지키는 친구가 되어준다.

특이하게도 맹인이지만 의사인 시 박사의 말에 정답이 있었다.
"침묵하는 건 자신을 죽이는 거예요. 말소리가 들려요. 당신으로부터, 사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요. 난 당신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어요. 베아트리스, 당신은 춤을 춰야만 해요..."
십 년 넘게 산부인과 병동의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베아트리스는 2호실 여자의 죽음에 잠시 의심을 받지만 결국 풀려난다.
그리고 오래전 순회공연단의 멤버였던 남자에게 안기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시 박사의 말처럼 그녀가 다시 춤을 출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상적인 삶이라는 버거운 춤을 억지로 추었던 그녀가 꿈꾸는 진정 자유로운 알몸의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