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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꼬레아
정준 지음 / 청동거울 / 2014년 3월
평점 :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이 그림으로부터였다.
독일출신의 화가 루벤스가 그렸다는 이 그림속에 남자가 망건을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외교관이기도 했던 루벤스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나 그림으로 남은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일본인에 의해 마카오, 인도, 고아항, 유럽 대륙 등지로 팔려간 수많은
조선인 노예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골치아픈 이웃인 일본은 조선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열라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키기 전부터 남쪽의 해안지역을 노략질을 해왔으며 몇 차례의 침입으로 우리땅에 남긴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작가는 어느 잡지에서 정유재란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나가사키항을 통해 유럽의 각나라로 팔려가는 비참한
노예신세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책을 쓸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이탈리아에서 그림으로 남겨진 사내에 대해 내내 궁금했었다.
아주 오랜 기간 작가는 그 사내의 행적을 쫓는 여정을 함께했고 결국 수백년전 타향에서 눈을 감은 사내를 세상에
다시 일으켜 세웠다.
몰락한 신라의 귀족가문의 아들인 현민은 자신의 결혼식날 이땅을 침범한 왜구들에 의해 아내와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당시 일본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전쟁욕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고
새로운 세력인 도쿠카와 이에야쓰가 부상하고 있었다. 우물안 개구리였던 조선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중요항구에 무역선들이 오가고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등 도약의 서문을 열고 있는 중이었다.
과도한 전쟁비용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일본은 조선의 보물을 약탈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끌고가 보잘것 없는 자신들의 문화를 이끄는 첨병으로 활용하거나 노예로 팔아넘겨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사실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당시
끌려간 사람들이 각국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었다..
작가는 당시 조선의 정치와 역사는 물론 일본의 역사와 정세까지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일본을 드나들던 스페인, 포르투칼, 이탈리아등의 정세와 오래된 역사까지 찾아낸 것을 보면 '안토니아 꼬레아'를
세상에 다시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예선을 타고 가다 난파를 당해 이탈리아의 해안도시에 도착한 현민은 타고난 지혜와 무술솜씨로 귀족들을 감복시켜
결국 노예의 신분을 벗고 알비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조선인들과 함께.
지금도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들이 알비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국에서
눈을 감은 한 남자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일본의 악랄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사무라이와 게이샤 문화를 통해 피와 음란한 성에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해져버린 저급한 인간속성을
지닌 일본인들에게 왜 우리는 그 후로도 시달림을 당해야 했을까.
현민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스페인과 경제중심의 도시 피렌체의 실상을 통해 당쟁에 급급했던 무능한
조선관리들을 비교하고 절망한다. 책을 덮고 잠시 '안토니오 꼬레아'가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한번도 조선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전쟁으로 초토화되어버린 조국이 다시 우뚝서기를 바라는 것으로 작품은 마감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전쟁을 치르고도 정신 못차리고 36년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조국의 미래를 알았다면 차라리
돌아오지 않은 것이 나았을지도...
단순히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노예가 되었던 사내의 여정이 아닌 당시 세계의 정세를 탐방할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