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받아들여졌다 -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51편의 묵상 잠언
류해욱 지음, 남인근 사진 / 샘터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한 권의 책에서 수많은 작가와 시와 음악을 만났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나는 작가의 안목과 지식과 더불어 기가막힌 기억력에 탄복하곤 한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가슴을 치는 언어가 있지만 따로 메모를 해놓지 않는 한

기억하는 것은 힘들다. 아마 카톨릭 사제이자 시인이며 번역가인 작가는 아주 오래전의 시간들을

찾아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그 일들을 잊지 않았으리라.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과 살면서도 내 삶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당치도 않은

욕망에 들떠 있을 때 이 책은 바람 한 줄기에도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 하나에도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지 문득 깨닫게 한다.

조용히, 하지만 강직하게 느슨해진 삶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것만 같은 다정한 오빠와 같은 책이다.

 

 

살면서 내가 신에게 느꼈던 갈증들..도대체 이 세상에 왜 불행한 사람들을 만드시는 겁니까..했던 그 물음들.

캄보디아 난민촌에서 오랜 내전으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연민과 동시에 분노가

일었다는 인간다운 고백에 가슴이 저렸다. 아무리 신을 대신하는 사제라고 해도 뭔가 부당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의 일에 인간다운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 안된다.

'하느님! 제발 저들의 마음을 좀 어떻게 해보세요.'....아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을까.

신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사악한 인간들의 악행에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우리에게 사랑을 잔뜩 남기도 떠난 장영희 교수를 그리워 하는 글에서는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이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남게 됩니다. 그러니

함께 살아 있을 때,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정성껏 사랑하십시오.' -31p

아 사제이신 분도 이런 회한이 있을 수 있구나...어머니를, 친구를 그리며 가슴 아픈 것은 마찬가지구나.

나 역시 동생 둘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면서 '있을 때 넘칠만큼 사랑하십시오.'를 외치고 싶었다.

 

 

헤르만 헷세의 글에서 지금 이 시간 이 곳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는다.

'삶에서 지켜야 할 의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행복해야 할 하나의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누구든 행복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을 것이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어쩌면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종이 한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우리는 이 세상에 행복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자신이 몹시도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명의 찬란한 향연이 시작되는 요즘, 산다는 일이,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이렇게 소중하게 받아들여졌으니 아름답게 의무를 다하고 떠나라는

말씀이 아닐까. 내 마음에 꽃이 가득 핀 것만 같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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