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술래
김선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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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 죽임을 당했던 소녀가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아빠를 찾아왔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 사랑하는 사람 곁을 맴돌다가 49일이 지나면 저들이 가야할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아직은 너무도 어린 여덟 살 소녀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3년의 시간이 걸린다.

 

일찍 아빠가 되어버린 술래의 아빠는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LED손전등을 파는 일을 한다.

오래전에는 인형탈을 쓰고 행사장을 뛰는 일을 했다는데 그 덕에 평생 무좀을 달고 살아야 했다.

술래는 아빠가 일을 나가면 혼자 남는다. 그러다가 아파트 복도에서 누군가 내어놓은 짜장면 그릇을

뒤지고 있는 영복을 만난다. 영복이는 아버지와 함께 탈북을 한 소년으로 술래보다 두 살이 많지만 남한으로

와서 나이를 두 살 낮춰 신고를 했단다. 그래서 아빠에게 2년 만에 돌아온 술래와는 동갑이 되었다.

 

 

" 왜 내이름은 이래요?"

"숨바꼭질해본적 있지? 거기서 술래는 언제나 한 명이잖아. 이미 특별한 사람인 거지. 그 특별한 술래가

해야 하는 일도 특별한 거고."

어느 날 술래는 자신의 특별한 이름에 대해 아빠에게 묻는다.

"술래는 숨은 걸 찾는 사람이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잘 안들리는 소리나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해. 아빠는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게 술래였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꼭 그런건 아니지만 술래아빠에게 술래는 특별한 딸이었다.

아빠의 바람대로 술래는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특별한 것들을 찾아내는 그런 아이가 되었다.

오랫동안 아빠 곁에 있었다면 더 특별한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래는 짧은 시간동안 아빠 곁에 있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오직 술래를 알아보는 이는 아빠와 영복이 뿐이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은 천해진다'라는 열 살 답지 않은 말을 하는 영복이는 탈북을 하는 동안 수많은 죽음과 맞닥뜨려서일까.

조로(早老)해 버렸다. 생과 사의 경계를 보는 특별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제 할 일이라고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노인이 있다.

하지에 태어나 가난을 끼고 살았던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였고 총상으로 튀어져 나온 내장을 집어 넣으며 살아남은

용사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을 죽여야 했던 아픈 상처를 숨기고 살고 있다.

그의 곁에 어느 날 어눌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도통해보이는 광식이가 찾아온다. 그가 몇 십년동안 자신을 가두고 살았던 담을 넘어.

썩어가는 육신이 발견되지 못할까봐 한 달에 두번 피자배달을 예약한 그에게 광식은 처음에 자신이 돌봐줘야 하는 불쌍한 늙은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광식은 이제 꺼져가는 그의 삶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우미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외롭다. 다만 그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일 뿐.

자신의 죽음을 모른 채 아빠 곁을 떠나지 못하는 술래와 엄마와 누이를 잃고 남한으로 내려온 영복.

자신이 살다 갔다는 흔적조차 지우고 싶은 노인과 무슨 이유인지 정신줄을 놓아버린 또 하나의 노인.

 

각각의 삶 혹은 죽음에 상관없을 것 같은 네 사람이 어느 날 만나게 된다.

술래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기위해 노인을 찾아오고 노인은 어느 누구의 일에도 무심했던 마음을 바꿔

술래의 엄마찾기에 동행한다. 꿈인듯 생시인듯 찾아와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술래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이 년만에 자신을 찾아온 딸 술래가 언제가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리라는 걸 아는 아빠는 그 시간을 견딘다.

술래는 결국 누군가를 찾아내 술래의 자리를 물려주고 훌훌 제 갈길을 가리라는 걸 아빠는 안다.

굳이 재촉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영원히 곁에 붙잡아 두고 싶었겠지만.

 

맑고 순수한 술래가 만난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문득 천지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운 어느 날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어느 순간은 특별한 존재였다는 걸

알게되는 쓸쓸하지만 조용히 차오르는 마지막 장면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모두들 밥먹고 출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채 죽음으로 끌려간 술래같은 아이가 혹

우리곁을 맴돌고 있지는 않은지...제발 잘들 가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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