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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TV만 틀면 여기저기 맛집소개가 일색이다. 일단 매체에 소개가 되면 한참동안 그 맛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살기가 어렵다고들 해도 역시 맛있는 집은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대부분 맛집들은 그리 오래된 집들이 아니었다. 가끔 2대니 3대니 전통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100년이 된 맛집은 보지 못했었다.
'쓰가루 백년식당'은 도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쓰가루'지방에서 3대를 이어온 메밀국수집 이야기이다.
일본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나라'인데다 특히 요즘 망말행진중인 아베정권의 만행때문에 일본여행도
가기 싫을만큼 감정이 좋지 않지만 전통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문화는 제법 본받을만한 것이 있다고 본다.
마이스터학교가 잘 되어있는 독일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가는 직업이 많다고 들었다.
전통주라든가 라멘, 도자기부터 전통적인 축제에 이르기까지...사실 이런 점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저 지방의 작은 소도시인 히로사키의 '오모리식당'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려서부터 국수를 만들어 팔아야 했던 오모리 겐지에 이어 3대인 오모리 데쓰오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전통을 고집하며 메밀국수를 뽑고 구워 말린 정어리로 국물을 내는 고집스런 장인이다.
그의 아들 요이치는 고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나갔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풍선아트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쓰가루 지방출신 사진사 나나미와 연인사이가 되지만 소심하면서도 나약한 구석이 있는데다
유명 사진사로 발돋음하고 있는 나나미에게 왠지 주눅되는 것 같다.
쓰가루지방의 전통축제인 벚꽃축제를 앞두고 요이치의 누나는 아버지가 크게 다쳤다며 축제를 책임져달라고 연락을 한다.
하지만 오월 연휴는 풍선아트의 일년중 가장 대목이라 망설이게 된다. 마침 연인 나나미와 사소한 오해로 마음이 복잡했던
요이치는 예고도 없이 쓰가루의 오모리 식당으로 향한다.
고향이 주는 안락함에 취한 요이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옛친구들과 회포도 풀고 벚꽃축제를 준비하게 된다.
나나미는 스승의 발병으로 홀로 정신없이 촬영을 하다가 역시 고향인 아오모리로 향한다.
금융업계에 자리를 잡은 멋진 청년과 선을 보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마음이 불편했던 나나미는 의도치 않게 선을 보게되고
마침 그 장면을 요이치에게 들키게 된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풍선아트일이 즐겁긴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인 탓에 나나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요이치와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요이치를 불안하게 지켜봐야 하는 나나미의 사랑.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사진사로서의 성공을 눈앞에 둔 나나미로서는 사랑하는 요이치의 고향행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순수한 두 사람의 사랑은 다시 꽃을 피우고....
벚꽃축제를 배경으로 해서 그럴까...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그려지는 꿈같은 소설이었다.
가업이긴 하지만 가난한 식당을 아들에게 억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와 옆에서 묵묵히 아내의 역할을 하는 어머니.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 도쿄에 정착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른 채 겉돌고 있는 요이치.
하지만 고교졸업앨범에서 찾아낸 자신의 10년후 모습에 대한 다짐을 보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제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할 일을 다 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사부님.'
무뚝뚝하던 아버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이제 오모리 식당은 100주년을 맞아 4대가 결정된 셈이다.
아주 오래전 발가락이 없던 증조할아버지 겐지에게서 물려받은 쓰가루 칠기 자개 서랍장에 고이 간직되는
요이치의 편지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 겐지의 친구는 귀한 칠기 자개 서랍장을 만들어
겐지에게 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죽어도 이 자개장은 친구의 손자에게 주겠노라고 했었다.
그 바람대로 그 자개장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돌아올 요이치에게 전해질 것이다.
겐지의 고집스런 메밀국수와 전통을 함께 물려받아 멋진 오모리 식당은 앞으로 수십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참 이 작가는 따뜻한 사람이다. 전작인 '무지개 곶의 찻집'이나 '당신에게'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역시
전해진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라면 분명 따뜻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일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아무리 추운 이런 겨울에도, 삭막한 시절에도 세상이 제법 살만하다는 희망을 주는 작가에게 감사의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