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
한경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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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 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면 내 꿈을 접어야 하겠다는 자괴에 빠지게하는 책을 만나게 된다.

노벨상을 탈만큼 작품성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반열에 오르지도 않는 작품인데도 그저

형편없는 내 글솜씨가 부끄러워 짐짓 '꿈꾸는건 자유니까 뭐'하면서 슬그머니 꿈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마지막장에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왜 그녀의 글 하나하나가 내 가슴을 후벼놓았는지 알게되었다.

그녀의 삶이 경험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글이었기 때문이었구나.

사랑이 내 가슴에 가득차 있을때에도 그 사랑이 훌쩍 떠나버렸을 때에도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사가

유독 가슴을 저미는 적이 있다. 단지 3분정도의 노래속에 들어있는 가사가 몽땅 내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던 기억.

한번쯤 누구라도 있을법한 그 기억은 짧지만 강렬한 가사의 절묘함에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가사를 기가 막히게 써서 작사가상을 받은 작가라고 했다.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이 책속의 주인공 정완이처럼 시나리오 작업을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난 그녀의 자전적일지도 모를 이 소설이 참으로 좋다.

 

 

사실 작가에 대한 내 동경들은 숱한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게 했고 때로는 말고 술로 그들과 소통하면서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인간'을 발견하고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환호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이 책의 작가가 '예술의 전당을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재래시장의 물비린내를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라는

말에 내 무모한 동경이 참으로 어리석다고 느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사람이 있듯이 그저 멀리서 작품에서 작가를

동경하는 일들이 훨씬 아름답다고 정리하기로 했다. 난 예술의 전당이 어울리는 작가보다는 감자탕집에 앉아있는 것이

몹시도 어울리는 사람냄새나는 작가를 좋아하기로 했다.

그런 범주에서 내 좋아하는 작가목록에 '한경혜'를 추가하기로 한다.

마흔 이라는 나이는 참...예전에 내가 전혀 도달하지 않을 것 같던 마흔이 멀리 보였을 때 누군가 그랬었다.

마흔은 이미 여자가 아니라고....그저 엄마이고 아내이고 이모이고 외숙모일 뿐..

하지만 6학년 때 만나 마흔에 이른 네 여자들보다 십 몇년을 훌쩍 더 살고 보니 서른 아홉을 넘기는 마지막 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삼십대와 결별하는 그 순간 나는 이제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는 상실감을 느꼈던 것일까.

 

 

 

결혼정보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아들하나를 둔 이혼녀 정완.

쿨하게 연애하고 쿨하게 이별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지연.

심리학 교수이면서 여전히 사랑다운 사랑은 젬병인 선미.

잘 나가는 학원강사를 둔 전업 주부 현주.

그저 이웃에 흔하게 볼 수 있을 그런 여자 넷의 삶을 통해본 결혼과 사랑의 의미들.

어찌 되었든 더 이상은 같이 살기 싫어 이혼한 남편의 재혼 소식에 쓸쓸해지는 장면이나 그토록 쿨하게 연애를 즐기던

지연이 농약을 들이키는 장면. 그리고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되었지만 헤어져봐야 무슨 득이 있을까 싶어 주저앉는 모습은

바로 내 얘기이기도하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고 일기라는게 마음에 들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열 살 태극의 일기에는 재혼한 아버지와 새엄마때문에 상처받고 적극적으로 엄마에게 남자가 필요하다고 외쳤던 태극이가

엄마의 연애에 불안감을 느끼던 장면들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몸도 섞고 마음도 섞고 말도 섞고 인생도 섞는 그런 결혼이 꼭 필요한 것일까.

자신에게 남자는 아들뿐이라고 마음을 다잡던 정완이 구속되는 것이 싫어 연애만 하자는 도영을 떠나는 장면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결혼보다 어려운 재혼이 싫으면서도 연애만 하자는 남자를 굳이 떠나보내는 이유는 뭘까.

연애의 완성이 꼭 결혼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아님 그저 즐기는 상대로 나를 너무 가벼이 여긴다는 심정때문에?

분명 나도 정완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애가 꼭 미래를 결혼으로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안타까웠다.

문득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의 사랑과 결혼을 떠올린다. 모두 다른 색깔로 살아가는 친구들 역시 나름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음력으로 새해 첫날 이 소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와는 조금 다른 원작이지만 마흔의 여자들에게 사랑과 연애..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자꾸 되묻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정직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쓸 수 있는지...그녀의 작품들을

골라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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