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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Somebody watching me!'
1949년에 발표된 조지 오웰의 '1984'를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지 오웰은 이 소설을 쓰면서 1984년 무렵 자신의 글처럼 그런 일들이 실제할 것이라 믿었을까?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린나이이지만 섬뜩하면서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누군가 지켜보는 세상, '빅 부라더'가 지배하는 거대한 감시국가.
저자는 후기에 처가인 정읍근처에서 차가 고장나 보험회사에 SOS를 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내가 어디있는지 알려고만 하면 알 수 있는 세상에 서있다는게 놀라웠다고 했다.
요즘 카드사에서는 고객의 정보유출로 엄청난 질타를 받고 있다.
나 역시 주민번호부터 주소, 이메일, 신용등급까지 몽땅 털리고 보니 발가 벗겨져서 거리에 서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혹시나 내 정보로 누군가 포탈사이트에 가입을 해서 마구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는 내가 국경없는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상상을 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솟는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 덕분에 범죄율이 떨어지고 뺑소니사고의 경우는 거의 100% 해결이 된다고 하니
'감시세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해보지만 역시 '빅 부라더'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보육원 출신의 재황은 보육원에서의 끔찍한 기억을 간직한 채 성장하여 갖은 고생끝에 명문대에 입학한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머리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는 성실한 학생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가의 모기관으로부터 고용된 관찰자 수인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다.
재황의 겨드랑이에 심어진 인식칩이 움직일 때마다 수인은 그를 쫓으며 매일 일지를 작성하여 기관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우울증과 관음증의 이력을 가진 수인은 바로 그런 병력이 도움이 되어 모기관에
취직이 되었고 재황의 관찰가가 된 것이다.
수인은 '밥'이란 명칭으로 재황을 부르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다가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보육원 동기인 광모는 재황을 이용하여 여자장사를 하려하고 보육원의 기억을 접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재황은 광모의 꼬임에 빠져 학교마저 휴학한 뒤 광모와 함께 더러운 용역일을 하게 된다.
수인은 왜 기관에서 재황을 관찰하는지 의문을 갖고 전 관찰자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모든 것은 비밀일 뿐
알아낼 수가 없다. 재황을 사랑하는 승희와 보육원시절 좋아하던 문자, 그리고 광모의 애증어린 관계가
펼쳐진다. 이 모든 사건은 1988년 9월 한 조리원의 화재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재황은 국가의 모종의
프로젝트의 실험물임이 밝혀진다.
우월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그렇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이론일까.
우리 인간은 이제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있다.
얼마전 미국의 대통령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를 도청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다.
그 얘기는 이미 그런 일들이 버젓이 진행되어왔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미 감시는 사회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네.."
재황을 쫓던 수인은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포착한다.
과연 감시의 꼬리는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재황의 부모를 찾기위해 결국 기관의 내부까지 침투하게 된 재황과 광모.
그 곳에는 재황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람들의 관찰 기록지가 있었다.
과연 이 소설이 허구이기만 할 것인가. 책을 덮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13월이란 제목은 달력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어딘가 실제하는 '빅 부라더'의 실체가 아닐까.
재황의 탄생과 부모에 대한 비밀을 쫒는 미스터리로 부터 이 사회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모습까지
씁쓸하면서도 섬뜩한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우월한 아리아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행했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결국 아무죄도 없는 아이들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져갔지만 지금 우리 곁에
비밀스런 인간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빅 부라더'의 실체를 믿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답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1984'년 그 소설속의 인간들과 다르지 않음을 서서히 확인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2014년에 만난 '1984'! 등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