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으로 떠난 소풍
김율도 지음 / 율도국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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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무작정 서울에 상경한 아버지는 복개공사를 한 청계천 변에서 리어커를 끌며 장사를 했다.

그의 아들이었던 시인은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졌던가보다.

창신동 달동네에 자리잡고 낙산을 넘다들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절룩거리던 그의 마음은 시로 다독이는 사람이 되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다락방으로 떠난 소풍'은 어린시절 아이들이 신나게 소풍을 간 날, 혼자 쓸쓸히 다락방으로

소풍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고스란히 그려져있다.

'몸이 불편하면 소풍 가지 않는 것을 국민교육헌장처럼 믿으며 다락방으로 올라갈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 친구들과 다른 신체를 가진 아픔을 지녔을 아이가 그 신나는 날 김밥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김밥을 먹고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든 모습을 모습과 보물찾기로 찾은 선물을 빼앗아 숨기고 싶었다는 심정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가 살아온 시절은 정상적인 사람도 견디기 힘든 폭력과 억압이 있던 시간들이었다.

하물며 장애를 가진 남자가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제몫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굴은 숨기고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았다...하늘로 돌아갈 날은 아직 멀었지만

얼굴을 숨기고 내 속의 너무 많은 나를 꺼내는 일은 그 후로 많을 것 같았다.' -성우시험-

 

자신의 절뚝거리는 몸을 쳐다보는 시선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얼굴을 숨기고 할 수 있는

성우시험을 봤을까. 아마도 자신의 시처럼 그 후로도 얼굴을 숨기는 일들은 많았을 것이다.

대신 그의 목소리는 시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아무리 추워도 개나리는 꽃필 시간이 되면 일어난다...' -개나리는 알고 있다-

 

찬 바람이 비쩍 마른 가지를 흔들어도 기어이 봄이 오면 꽃을 피우는 개나리는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시간을 아는 개나리처럼 시인은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꽃을 피워내야 하는지

아픔과 상처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후에 깨달았을 것이다.

홍길동이 생각한 이상향 '율도'라는 이름의 시인은 멋진 그 세상에서 잠시 내려와 마음이 이즈러진 사람들을

다독이라는 미션을 수행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이즈러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그의 말이 이 추운 겨울날 몹시 따뜻하다.

그리고 슬프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 잠시 소풍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인은 우리가 딛고 사는 땅보다 조금 높은 다락방으로 소풍을 온 것뿐이다.

다락방을 오르지는 어렵지만 다락방에 올라본 사람들은 안다. 자그맣고 어둔 다락방에서 내려다 보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는 것을. 추억이 덕지 덕지 묻은 보물상자가 숨겨진 다락방에서 내려와 힘차게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세상에 잠시 소풍나온 동무들. 지금은 추워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개나리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 날, 김밥 싸들고 시인과 봄소풍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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