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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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일 뻔 했던 한 루저의 이야기이다. IQ 170과 108의 차이는 엄청 큰 간격이다.

분명 인생이 IQ 숫자와 비례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수가 높았다면 자존감 하나는 끝내줬을텐데.

 

마흔의 캐서린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곤 하는 골치덩어리 엄마이다.

그녀에겐 곧 열 여덟살이 되는 아들 프랜시스가 있고 남편이 다른 열 세살의 아들 니키가 있다.

대학에서 치어리더로 활약할 만큼 미모를 지녔던 캐서린은 가계에 전해지는 유전적인 이유였는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열 일곱 살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성숙해 보이는 아들 프랜시스는 190 cm에 가까운 키에 건장한 몸을

지녔고 얼마전까지 유망한 레스링 선수였지만 부상을 이유로 그만 두고 말았다.

그에게는 조그만 체구에 소심해 보이는 절친 그로버가 있었고 프랜시스와는 다른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로

예일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도무지 학교공부에는 소질이 없어 유급상태에 놓인 프랜시스는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엄마에게 군대에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충격을 받은 캐서린은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동안 프랜시스의 친아버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엄마의 유서에서 프랜시스는 자신이 천재들의 유전자를

받아 우월한 인종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의 작품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수한 두뇌의 정액으로 태어난 아이임을

알게된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기가막힌 미인 앤메이를 만나 우정을 나누던 프랜시스는 자신이 루저라고 생각했던

열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부인 라이안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한다.

프랜시스는 이제 두 가지 모험을 이루기 위해 서부로 향하게 된다.

자신의 친아버지와 그동안 자신의 꿈에 수없이 등장했던 라스베가스에서의 도박장에서 엄청난 돈을 따는 꿈을 위해.

 

잘나가는 부모를 두었지만 시원치않은 외모와 소심함때문에 루저그룹에 속했던 그로버와 무슨이유에선지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앤메이, 그리고 덩치만 컸지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프랜시스의 여행이 시작된다.

말하자면 '루저와 정신병자 트리플의 기막힌 여행'쯤이다.

 

 

천재적인 유전자를 받아 우수한 두뇌들을 키워내려던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유일하게 프랜시스의 친부에 대한 정보를

지닌 앤디를 만나 친부인 '이언 도블'의 정보와 주소를 받아 멕시코의 티후아나로 떠나게 된다.

자신이 영원한 루저그룹인줄만 알았던 프랜시스의 친부가 하버드 출신의 천재 박사라니..

설레이는 프랜시스만큼이나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결국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고 멕시코까지 가서 만난 프랜시스의 친부의 모습이라니.

독일이 자신의 종족인 '아리안'을 양성하기 위해 펼쳤던 무시무시한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물론 유전학적으로 우수한 인자가 다음대에 유전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 아닌가.

분명 강력한 유전인자와 더불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후천적인 요인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다소 엉뚱하기도

한 천재양성프로젝트가 반인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티후아나에서 만난 프랜시스의 친부의 모습을 보니 정말 피는 속일 수 없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프랜시스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루저그룹에서 빠져나오기는 글른 것일까.

그렇다면 끊임없이 꿈에서 암시되었던 도박장에서의 한탕은 어떻게 되나..

양부인 라이언에게서 빌렸던 돈은 허무하게 도박으로 날리고...

엉뚱하게 앤메이는 프랜시스에게 임신사실을 알려온다. 십대에 아빠가 되는 것도 도블이 아닌 도블린스키의 집안의 내력이라니

확실히 유전인자의 힘은 무섭다.

 

프랜시스는 저주받은 유전인자의 힘을 누르기 위해 공부를 결심하고 앤메이는 아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트레일러 집을

면치못하는 프랜시스는 자신을 두고 떠나려는 앤메이와 아들을 붙잡기 위해 진정한 도박을 시도한다.

여차하면 지원입대를 하기위해 머리를 자르고 2년동안 모아둔 종자돈을 가지고 라스베가스로 날아가 운명을 건

도박을 시작한다. 운명은 프랜시스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지키게 할 것인가. 아니면 파병되어 주검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길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결판날 것이다....그리고 공이 속도가 아주 느려져 마침내 한 숫자 칸에 틀림없이 멈춰

설 듯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이어 실제로 딸깍 하며 공이 최종적으로 어떤 칸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431p

 

과연 프랜시스가 건 50만달러는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줄 것인지...그건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고 슬쩍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저자가 다소 원망스러웠지만 나라도 이런 결말밖에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루저'로 표현하며 외국으로 도피할 것을 결심한 저자에게 거짓말처럼

스위스로 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드디어 이 소설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프랜시스는 '위너'가 판치는 세상에 '루저'로 살아가야했던 저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인지 모른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우리 속담처럼 족쇄같은 운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마지막 순간 떼구르르 구르는 주사위가 프랜시스가 건 숫자에 멈추게 하지 않고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렇지 아무리 인생은 도박이라지만 너무 쉽게 졸부가 되는 이야기로 남기기에는 인생이 만만치 않음을

이미 자신이 겪어왔지..하지만 그런 반전과 기적같은 일들도 있을 수 있는게 인생이라는 것도 좋은 일 아니겠어.

오늘 남은 시간 나는 마지막 주사위게 어디에 멈췄을지 상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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