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종합병원 영상의학과 베테랑 기사인 로라는 결혼한 지 23년된 마흔 세살의 여인으로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 벤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딸 샐리의 엄마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그녀의 삶은 사실 결핍과 상처가 숨겨져 있었다.

전액 장학금을 받기위해 메인대학교를 선택했던 로라는 대학시절 첫사랑을 잃는 아픔만 없었다면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스턴에서 열린 영상의학과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로라는 자신의 삶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짐작하지 못했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던 로라는 쉰 다섯의 보험세일즈맨 코플랜드와

만나게 된다. 칙칙한 골프점퍼를 입고 낡고 유행에 뒤떨어진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로라의 삶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던 학회를 학과장인 헤릴리 박사가 로라에게 대신 가도록 하지만 않았다면 로라는

예전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저 서비스 영업에 익숙하고 넉살좋은 보험세일즈맨의 친근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2년째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 댄과 실연의 상처를 견디고 있는 아들 벤, 언젠가는 차이고 말 어설픈 사랑에

빠진 딸 샐리의 문제는 그녀가 속한 세상의 우울한 모습들 뿐이다.

자신의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열아홉살때의 그 강렬한 사랑이 사라지고 틈을 비집고 들어온 댄의 사랑이

뜨겁지도 달콤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균열이 간 심장을 메우고 싶었을 뿐.

그렇게 시작된 댄과의 관계는 아들 벤을 임신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고 그저 그런 결혼생활을 이어올 뿐이었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너무도 닮은 코플랜드와 대화를 나눌수록 로라는 그에게 빠져들어가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코플랜드역시 지적이고 자신의 상처와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로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폭군같은 아버지에 의해 재능마저 거세당하고 안락한 삶에 파묻혀 허수아비처럼 살아온 코플랜드는

아들인 빌리가 정신병원에 갇혀 만날 수 없는 아픔을 고백한다.

로라역시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지 못한 채 운명에 순응하듯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코플랜드에게 고백한다.

동의어 사전을 탐독하고 프러스트의 시를 좋아하고 문학에 대하 갈망이 너무도 비슷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에 의해 재능과 감정을 거세당한 채 결핍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침내 진실하고 행복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삶에 자신을 내팽겨쳐 두는 것은 죄'라고 외치면서.

 

 

하지만 마지막 순간 코플랜드는 아무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로라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들의 사랑은 불과 이틀...48시간 동안이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두 사람은 지나온 모든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었다.

로라가 골라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죽재킷과 멋진 안경을 남겨두고 왜 코플랜드는 떠나야 했을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과거에 익숙했기 때문이었을까.

 

'생사에 따라, 변화에 따라, 선호도에 따라, 우리 모두게 매여 있는 냉혹한 운명에 따라, 인연의 끈은

어쩔 수 없이 끊어지게 되어 있었다.'-425p

 

영원이 계속될 것 같았던 관계들이 언젠가 무슨 이유에서이든 끊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암흑과 같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로라와

코플랜드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앞에 나는 환호의 박수를 보냈었다.

비록 이틀간의 헤프닝으로 막을 내려 내 가슴도 아팠지만.

적어도 로라의 아무 의미 없는 결혼생활을 끝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긴 했다.

늘 로라의 배려만을 기대하고 전혀 지적이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은 남편 댄은 로라의 이혼선언이후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한다. 왜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

 

'파격' '일탈'

그 날이 그 날같은 어느 날, 이런 멋진 사랑이 내게도 와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로맨스'가 남들에겐 '스캔들'로 오도되겠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 나를 진정으로 바라봐주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건 행운이 틀림없다.

결국 달팽이 집안에 다시 숨어버린 코플랜드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미 그의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에. 나역시 그처럼 달팽이집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파이브 데이즈'는 스스로 정한 테두리 안에 갇혀 '나'을 잃고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날이다.

그 며칠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내 인생의 전환점을 결정할 수 있을지..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희망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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