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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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서 한 해 먹고살기도 힘든 어른들을 부모로 둔 무슨 군 무슨 읍에서 태어나 자란 나와

만석이 칠성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만석이는 많은 빚을 내서 특용작물을 재배하다가 농촌지도소의 지도에 따라 너도나도 똑같은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바람에 값이 폭락하여 집을 팔고 특용작물이 자라던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칠성이는 소를 키울 생각이었지만 미국에서 값 싼 소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소 값이 폭락하더니

사료 값마저 두 배로 오르는 바람에 소를 팔고 축사 문을 닫았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던 미선이를 만나 미선이의 자취방을 들락거리다가 미선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선이와 합치기 전에 정말 해보고 싶은게 뭘까.

 

글로벌 경기 침체로 문을 닫아버린 공단에도 취직할 수 없었던 나와 만석이, 칠성이는 우리들의

우상인 소녀시대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떠나기로 한다.

이른 바 '조공원정대'

여기에서 조공은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찾아가서 직접 선물을 갖다 주는 걸 뜻한다.

미선이가 아끼는 루왁커피T10을 훔쳐들고 조공원정대를 꾸민 세 사람은 숙박비라도 절약하려고

고향 선배 동수 형을 찾아간다.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등록금을 대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던

형은 어학연수 다녀온 잘나가는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옥탑방에서 주식폐인이 된 채 소일하고 있다.

다시 고향에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에서 토니와 제리, 티파니가

된 세 사람은 한 달이 지나고 월급을 타자 만석과 칠성이는 계속 제리와 티파니로 남기로 하고

자신만 원래의 목표였던 조공을 바치고 임신한 미선이와 살기 위해 고향으로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밀집한 팬들을 헤치고 밴으로 사라지고 조공으로 바치려 했던 루왁커피는

사정없이 짓밟힌다. 세 남자의 소녀시대에 대한 열정도 사정없이 짓밟혀버린다.

고향에 있던 미선이 티파니나 제시카란 이름으로 살기위해 서울로 향하고 '나'도 다시 토니로 살기위해

서울에 남기로 한다. 이미 서울에 수도 없이 진을 친 다른 토니들과 마찬가지로.

 

'조공원정대'가 소녀시대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순간에는 걸그룹을 향한 열정이 남아있었으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방황하던 청년들은 잘 나가는 놈들이 채우고 남은 자리에 자리를 잡게된다.

'조공원정대'의 깃발을 내리는 순간 그들은 어른이 되었고 막막한 삶의 무게가 얹혀지게 되는 것이다.

 

'안녕 할리'에서도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엄마 뜻대로 살아온 '나'가 멋진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독립을

꿈꾸지만 결국 다지 주저앉는 30대를 그리고 있다. 집에서 키우던 '할리'가 거세당하고 성대를 잃은 것처럼

'나'는 꿈을 거세당하고 퀵서비스를 하다가 숨져간다.

 

 

8편의 단편집 '조공원정대'는 하필이면 백수가 지천인 세대에 태어나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분명 밥을 굶을만큼 가난한 시대는 아니지만 꿈이 결핍된 이 시대를 능청스러우면서도 가슴아프게 꼬집는 것이다.

미국의 프라임 모기지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인 불황이 덮치고 이 속절없는 태풍은 대한민국 시골의 읍까지도 휘몰아쳐

할일없는 백수가 넘쳐나고 이런 시절만 아니었다면 태어났을 아기마저 떼어내야만 하는 아픔이 절절하다.

얼핏 유머스럽지만 진한 아픔이 녹여있는 단편들은 이 시대의 비정함과 결핍을 잘 대변해주는 참신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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