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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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쓴 쌩텍쥐베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사막이라면 사랑은 바로 우물이 아닐까.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은 바로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곡예사의 딸로 태어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에디뜨 피아프는 평생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나눴고 

가장 사랑했던 남자 마르셀을 잃고 절망했다. 남은 생애 동안 그 남자를 그리워하며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노라고 노래했던 그녀를 그나마 붙들어 준 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I'm a fool to want you'라는 노래가사를 듣노라면 거대한 밤바다에 홀로 앉아 희미한 달 그림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잔상이 떠오른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혼을 실어 '나는 당신을 원하는 바보랍니다...'

라고 절규하는 여인, 바로 세 번의 불행한 결혼과 다섯 번의 감옥행으로 비참한 삶을 살다가 마흔넷의 젊은

나이로 숨진 빌리 홀리데이의 모습이다.

 

에디뜨 피아프나 빌리 홀리데이처럼 듣는이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는 바로 그녀들의 불행한 삶과 그렇기에

더욱 갈구했던 사랑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들에게 가장 빛나는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이를 만났을 때가 아닐까.

 

 

나에게 '화양연화'는 스물 셋의 어느 봄날 문득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충무로의 길을 걸을 때였다.

쇼윈도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오늘을 기억할 거야.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임을...'

물론 그 순간 내 영혼도 충만했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부족한 것들을 압도하는 젊은 날의 빛나는

자신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베빈다'의 노래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에서 오직 다시 당신을 사랑하겠노라고 외친다.

그녀의 외침에 나는 다시 그 스무 살의 나이로 돌아가 철없어서 무모해서 놓쳐버렸던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늙는다는 것은 머리가 하얘지거나 주름살이 느는 것 이상이다.

'이미 때는 너무 늦다. 승부는 끝나 버렸다. 무대는 완전히 다음 세대로 옮겨 갔다고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노화에 따르는 가장 나쁜 것은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본문 중 앙드레 모루아의 인용문-

 

나이를 먹어가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오늘이 내 남은 생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날임을 인식 하는 것.

바람에 흔들리고 고통스러워도 그 속에서 설렘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는 것.

그 것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진정한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찬바람이 옆구리를 파고 드는 요즘 시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가슴을 부여안고 읽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책이다.

책에서 영화에서 그림에 이르기까지 쓰고 그리고 노래불렀던 이들의 혼을 불러내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를 묻는 그녀에게 불려나온 이들이 하나같이 외친다.

'사랑했던 순간!' 심지어 고통과 아픔이 같이한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노라고.

 

'자꾸 슬퍼지는 것.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그것은 곧 우리가 생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울컥 치미는 눈물, 그것이야말로 우리 생의 기쁨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울고 계신가요? 지금 흘리는 그 눈물은

당신 삶의 상처에 붙이는 아름다운 반창고입니다.'- 본문중에서

 

이 글을 읽고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그동안 숨겨왔던 슬픔들이 고통들이 와르르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자신을 안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어느 한 순간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다며 다독 다독 나를 토닥이는 것만 같아 차올랐던 슬픔이 가라앉는 것만 같다.

분명 나보다 몇 살 쯤 위에 있는 것 같은 언니가 나를 '다 괜찮다'하면서 지긋이 바라다 보는 것같다.

문득 고였던 슬픔이 모두 빠져나간것 같은 오늘 하루가 남은 내 생의 가장 젊고 소중한 '화양연화'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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