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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인생의 절반쯤 건너온 내게 37편의 사랑의 메뉴가 펼쳐져 있다.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사랑을 한다. 무수히 많은 색깔의 사랑들이 우리들의 인생을 스쳐간다.
내게 왔던 사랑은 어떤 색이었을까.
어딘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흘러가는 삶을 살 것만 같은 '여울'이란 이름을 가진 저자의 사랑이야기가
찬바람이 스산해진 이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30세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한 작품만을 남겼다고 했던가.
유일한 작품의 존재성을 드높이기 위해 더 이상 펜을 들지 않았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광활한 언덕에 비밀을 간직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폭풍처럼 몰아쳤던 기억과 다시 만났다.
'안타깝게도 캐서린은 한 번도 자신의 뜻을 온전히 펼쳐보지 못한 채 죽어간다. 아직도 우리 시대의 수많은 캐서린들이,
'렛 미 인!을 외치며 자신의 생을 안타깝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2p
죄인에서 시장으로 거듭난 장 발장의 사랑은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신보다 더 아프고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불멸의 사랑이었다.
유부녀이면서도 한 남자를 불꽃처럼 사랑했고 숨져갔던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은 여전히 여자에게 불공평하고 편협함을
들이대는 세상을 향한 전투같은 사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전당포를 운영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알료를 도끼로 살해하고 끝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사랑이 결국 구원으로 승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난한 집안의 딸인 소냐는 창녀가 될 수 밖에 없었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를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연민으로 시작된 감정은 애정으로 변하고 결국 그녀에게 고해하고 만다.
소냐를 통해 속죄의 욕구를 느낀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배의 길을 떠나 소냐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바로 이 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 사랑의 궁극의 목표는 바로 구원같은 것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나름대로 빛나는 모습의 사랑이 펼쳐진 책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명작들과 영화들을 만나니 사그라들었던 감동이 다시 고개를 든다.
물론 읽은 책보다는 읽지 못했던 작품들이 더 많아 부끄러움이 더하긴 했지만 푸른 그 빛만으로도 가슴이 시린 가을날,
사랑의 다채로운 빚깔들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어떤 사랑이었던 걸까. 마흔이 훌쩍 넘어 갑자기 찾아온 사랑때문에 평생 그리움으로 살아야 했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짧고도 강렬한 사랑이 한 번쯤은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안나 카레니나처럼 그렇게 전투같은 사랑을 치뤄낼 수 있을까..곰곰 생각해본다.
그저 그렇게 이제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물처럼 고여있는 내 삶이 '잘 있지 말고' 가끔은 소용돌이같은 사랑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이 설레임은 아직 사랑을 할 능력이 남아있다는 뜻은 아닐까. 고여있던 삶이 출렁거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