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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ㅣ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나를 많이 부끄럽게 만든 책이다.
만화로 독서의 재미를 알았던 그 때 이후로 만화가 이렇게 감동적이고 진실된 마음을 여는 매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들이었다.
'페코로스'는 탁구공만한 크기의 작은 양파 품종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한다.
아흔이 넘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너무도 힘들 것이다.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의 요양원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예순이 넘은 아들은 요양원에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불효로 늘 가슴아파한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10/27/13/hyunho0305_6620322658.jpg)
가난한 농가에 10형제의 장녀로 태어난 미쓰에는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도 가지 못한다.
지긋지긋한 어린시절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요이치의 아버지
사토루를 만나 결혼하지만 피폭의 영향으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술주정이 심한 남편때문에 고통스런
결혼생활을 하게된다. 세 아들을 낳았지만 막내는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그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
큰 아들 요이치는 아버지의 폭력이 싫어 도쿄로 떠났다가 이혼한 후 갓난 아들 마사키를 품에 안고 고향
나가사키로 돌아온다.
예전에 폭력성이 사라지고 유순해진 아버지는 팔십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고 그 때부터 치매증상을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유이치가 자신이 근무하던 월간홍보잡지에 매호 한 페이지씩 그려나갔던 만화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10/27/13/hyunho0305_9527145109.jpg)
요양원을 찾아온 아들 요이치를 남동생으로 착각하기 일쑤인데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요이치 언제 왔다냐" 머리는 싹 벗어져서는...네가 와줘서 참말로 좋다야."하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6남매를 낳고 자식 셋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늙어가시는 엄마도 저렇게 가슴속에 슬픔이 고여있겠구나.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10/27/13/hyunho0305_3735521930.jpg)
"너 예순 살 됐다면서? 예순 살 이면 너, 환갑이야. 이제 그리 젊지도 않으니까 술좀 작작 마셔라이~!!"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어린 자식인 것을.
하지만 자신을 그리도 힘들게 하던 남편도 어머니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치매증상을 보이더니 자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늘 자신을 찿아왔노라고
'내가 치매라서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겄다.'라는 말에
마음씨 고왔던 아내의 그리움이 절절히 다가온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3/10/27/13/hyunho0305_2276716538.jpg)
치매로 정신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과거의 시간들과 만나고 추억하는 가족사가 너무도 애틋하다.
한 때는 가난했고 불행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지나놓고 보니 다 그리움이었다.
엄마도 한 때는 소녀였고 아름다운 처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엄마의 손에 이끌려 고향 부두를 내려다 보던 어린 소년은 이제 머리가 벗겨진 늙은이가 되어
머지 않아 하늘나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갈 노모를 지탱해준다.
이게 인생인가 싶다.
가벼운 치매였을 때 제부와의 에피소드에 배꼽이 빠지게 웃음이 나왔지만 질곡의 시간을 지나온
어머니의 시간과 아픔을 들여다보니 절로 눈물이 나온다.
자비로 출판했지만 전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까지 만들어진 이유를 알 것만같다.
전세계의 자식들이 꼭 읽어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내 곁에 계시는 어머니를 더 많이 보고 만지고 안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