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밥상 이야기 - 내 영혼을 위로하는
김현 지음, 조민지 그림 / 오션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이제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은 살짝 맛만 보여주고 훌쩍 떠나가버리는 시절이 되었다.
밤새 서리가 내리고 새벽부터 창밖의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어깨가 시릴만큼 추위가 몰려왔다.
더운 여름보다는 왜 이렇게 찬바람이 불면 엄마표 음식들이 더 그리운 것일까.
표지그림속에 빨간 곤로(풍로의 일본식 발음)위에 올려져 있는 양은 냄비의 모습에 괜시리 코끝이 시큰거린다.
작가가 추억해낸 음식이야기를 읽다보니 내가 가진 추억과 겹쳐있어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과 어느정도는 겹쳐진 시간들을 살아왔을 작가의 어린시절은 그리 궁핍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녀가 살던 영도다리 건너 동삼동에는 배를 타거나 멀리 타국으로 돈을 벌러가신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가난을 이기기 위해 모두가 허리끈을 졸라매고 뛰어다닐 때였으니 교사였던 아버지를 둔
작가는 다행히 부모님과 형제들사이에서 가난을 겪지 않았던 것같다.
이북이 고향이신 어머니도 피난후 부산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그녀의 고향음식속에서 어머니의 어린시절을 대입해본다.
어린시절 이모댁에 가면 '재첩국 사이소, 멸치 사이소'하는 낯선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 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음식이 어머니보다 더 그립더라는 말에 나역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시절의 맛들이 그립고 길을 가다가도 문득 문득 엄마표 음식들이 그리워지는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인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슬픔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밖에 없었던 육개장은 이제 아버지를 추억하는 음식이 되었단다.
그렇다. '산 사람 살아야한다'는 말처럼 깊은 슬픔도 배고픔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니 어쩌랴.
서울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도다리 미역국이며 서대회맛이 궁금해지고 낯선 향때문에 먹지 않았던 방앗잎도 그 곳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는 맛이라니 어려서 엄마의 음식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싶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는 모양이다.
몰래 시켜먹으려다 결국 먹지 못한 짜장면을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긴 그 시절 비록 초라했지만 친구들을 불러 햄버거를 해먹었다는 소녀의 배짱이 결국 이런 책을 낼 수있는
작가로서의 미천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족'보다는 밥을 나누는 '식구'가 더 가슴을 파고든다는 말처럼 이제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에 둘러앉을
식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간 것같아 서글퍼진다.
내 밥상을 기억하고 추억해줄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은 무엇일까. 왠지 자신이 없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 어머니의 밥상을 결코 흉내내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읽는동안 내 영혼이 많이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