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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사진발을 믿어야 할까. 표지에 있는 마흔 여덟의 작가는 꽃미남의 얼굴이다.
도무지 시바(막연히 시바는 내가 알고 있는 열 여덟의 숫자를 가진 탄식의 언어라고 유추하기로 했다)나
조내(조내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우리말 사전을 뒤지고 심지어 욕말 사전을 뒤져도 답이 없다)
가 결코 긍정이나 순화된 우리말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단어를 마구 흩뿌리는 거친 남자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도통 술에서 깨어나질 못하겠다. 전생에 술하고 웬수를 졌는지 비 온다고 한 잔, 꽃잎이 진다고 한 잔,
반갑다고 한 잔, 헤어져 슬프다고 한 잔...도대체 술 안먹을 궁리는 없는 것인가.

가슴이 철렁하는 은행 우편물을 들고 쫄아서 찾아가보니 하느님이 류씨를 엄청 사랑하사 거금까지 보내시니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볼까 남태평양의 섬을 사서 죽도록 낚시나 해볼까 옛날 애인들에게 경비행기를 하나씩
선물할까...너스레를 떨기에 순간적으로 휴면계좌에 거금 47만 3천 5백 1원...이 잠깐 47억 3천 5백만..으로 보였다.
이런 뒤질랜드같으니라구. 화들짝...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내 입과 의식이 원초적으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시인이란 사람들은 노다지 술이나 푸고 연탄이나 걱정하고 연말이 다가오면 도지는 신춘문예에 대한 짝사랑으로
견디는 존재란 말인가. 이종격투기 선수였던 시인은 차라리 그냥 이종격투기를 하고 알콩 달콩 농사짓는 시인은
그저 농사만 알토란같이 지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것은 범사에 속물인 내 생각일 뿐.
춥고 배고프고 술고프고 사랑고파야 시도 나오고 시인이란 업을 뒤집어 쓰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옥수동 성당앞..인지-내 기억으로 옆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옆인지 항아리 갈비와 홍대 앞 라 꼼마와
흑석동의 지금은 없어졌다는 개미집은 내 발길도 무수히 닿았던 곳이리라.
추적 추적 비오는 날 사진으로는 멀쩡하게 뵈는 작가와 옷깃이 스쳤을지도 모를 일.
다행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등단 후 18년 만에야 시집을 냈다는 이 시인과 마주쳐 술이라도 기울였다면
술 값을 대신 내주거나 날 밤 새고 간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씨름을 했던가 담날 콩나물 천원어치쯤 담긴 검은 봉투를
건네야 했을지도 모른다. 시인하고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지론은 바로 이 작가의 말이니 탓하지 말지어다.
그래도 가는 곳마다 애인이 있어 좋겠다.
지금은 떠나버린 광석이형이 불러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은 유일했던 그의 첫사랑과 닮았거니.
늙은 애인이건 떠난 애인이건 술 값 내주러 달려오는 애인이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나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이외수선생을 비롯하여 밍규, 안상학, 박후기, 조동범, 하창수, 이제하, 황인숙...작가들이 불려 나왔다.
전지현이 자신의 꿈에 나와 결혼하고 떠났다고 징징 거리면서..시바..누구 맘대로 자기 꿈에 출현했다고 툴툴거리더니.
졸지에 불려나온 작가들은 툴툴거리지 않으려나.

'시인이 살지 않는 육신은 버림받은 곳이다......나는 나와 타협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전생을 망설였다.-249P
광고회사로 고추농사를 짓는 농부로(이건 정말 뜬금없다), 훌훌 영혼의 고향이라는 인도를 다녀왔어도
결국 그가 서있는 곳인 시(詩). 자신의 육신에 시(詩)가 실리지 않음은 버림받은 것과 같다니 천상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써야 부지를 할 것이겠지. 시래기국과 연탄 몇 장과 술과 씨름하면서.
'그래서 나는 몸에 딴 생각을 품게 하면 안된다. 무조건 술로 조셔서 모든 병을 술병으로 단일화시켜야 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따위에 몸을 내어줘서는 안된다.' -111p
이건 뭐 대통령 후보 단일화 선언도 아니고 하긴 목숨이 걸린 일이니 비장할 수 밖에.
스스로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니, 막장 술꾼이니 툴툴거리는 이 시인..귀엽다(오십이 낼모레인 사람에게
귀엽다니 시바..)
떠난 여인 그만 붙들고 진정 '사랑이 그대에게 다시 말을 걸어' 조촐한 울타리 꾸미고 살림이나 꾸렸으면 좋겠다.
술과의 사랑은 적당히 하고 이제는 사기도 어려운 연탄대신 사철 누르기만 하면 덮혀주는 가스보일러 틀고
시래기국 맛있게 끓여주는 그런 사랑말이다. 안되려나. 혹시 술값 내주는 애인중에 있으려는지.
내가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건 어찌 알았는지 삼류 트로트 통속 시인 류씨는 제법 산문도 불콰하다.
취한다. 딸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