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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평점 :
중학교 3학년인 알음과 소희는 단짝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절친이었던 두 소녀는
폐가로 찾아가 소원을 들어주는 귀신과 계약을 맺기위해 주문을 외운다.
계약자는 소원을 들어주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단다. 단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소원을 가지고 갈 뿐.
계약자를 찾아갔던 소희의 소원은 등교시간에 마주쳤던 이웃 남자중학교의 신율이란
아이의 사랑을 얻는 것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은 알음은프리랜서 일러스터로 일하는 엄마와 정과 돈이 다 넘치는
운좋은 남자인 아빠사이에 사랑받는 딸이었으나 어느 날 아버지가 데리고 온 남자아이의
출현으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알음이가 보기에 젊고 아름다운 엄마를 두고 넘치는 정을 주체못하던 아버지는 결국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미린이라는 여자의 아들 다움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더구나 '내 강아지'를 연발했던 할머니는 다움이가 친손주라고 믿고 보살펴주기 위해
집으로 온다. 이제 사랑스러운 손녀 알음이는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알음이보다 귀엽고 애교가 많은 소희는 신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신율이 모았다는 피겨를
구입하기 위해 알음이와 함께 신율의 집을 방문하게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알음이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소년이지만 탁월한 상술과 친절로 벌써부터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신율에게는
가슴아픈 가정사가 숨어있었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형과 그 상처를 잊지 못해 삐딱선을
타고 있는 쌍둥이 여동생. 가족이지만 서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삭막한 집안은 신율에게
커다란 아픔이다.

사랑받는 외동딸의 자리를 빼앗긴 알음에게 찾아온 계약자는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알음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다움이를 없애달라고 부탁한다.
소희가 좋아하는 신율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과 소희에 대한 미안함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에 휘말렸던 소희는 신율의 쌍둥이 동생 나비에게 끌리게 된다.
나비는 오빠를 잃은 슬픔을 '좀 노는 것'으로 발산하고 있었고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은
도둑질이나 삥땅을 치는 거친 모습의 아이들이다.
소희에게 수시로 나타나 메시지를 전하는 계약자의 모습은 사실 소희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의
모습이다. 어디에서나 튀지 않고 평범해 보이는 소희에게 계약자의 섬뜩한 예언이나 도발은
분출되지 못한 욕구를 지닌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가상의 대상일 뿐이다.
뜨거운 여름날 한바탕 폭풍우가 몰려왔다 사라지듯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혹은 미칠듯한 상황들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아프고 힘든 상처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끙끙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내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내 아이들의 모습도.
풋사과처럼 시고 단 사랑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에게 변덕스러운 감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과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자신에게만 닥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도 나누지 못하는 자신만의 아픔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나도 그랬었고 내아이도 그럴 것이고 알음이와 소희도 그럴 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나타나 아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계약자'는 그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때론 악마처럼 여린 아이들을 뒤흔들던 '계약자'는 아이들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 한 발자욱 밝은 곳으로
나오면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