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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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는 손가락으로 나의 고통을 연주하고 있었답니다.

그는 노래로 나를 부드럽게 사로잡았죠.'

 

아이팟 터치의 볼륨을 높혀 이어폰을 통해 이 노래를 즐겨 듣던 재수생 지용은

학원옥상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마치 야동에서 남자의 성기를 빨던 소녀처럼 가늘고 긴 원기둥 모양의 아이스바를

돌려 가며 쪽쪽 빨아먹던 그녀의 이름은 신혜였다.

학원에 등록된 이보니라는 친구대신 강의를 듣고 있다는 신혜는 술장사를 하는 엄마와

얼마전 교통사고로 죽은 새아빠와 함께 들어온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영어유치원을 경영하는 엄마와 의대를 다니는 형, 유학중인 누나를 둔 지용은 한 마디로

집안의 골칫거리이다. 서울시안에 있는 대학은 모두 서울대라는데 웬만한 사립대에 합격을

했지만 양에 차지 않았던 엄마는 재수를 강요하며 학원을 골라주었었다.

 

새아빠가 남기고 간 열 한살짜리 여동생이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엄마한테 성매매를 강요당한다며

김치냉장고에 숨겨둔 돈을 훔쳐 동생과 숨어버리고 싶다는 신혜를 대신해 지용은 신혜의 엄마를

살해하고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지용은 부드러운 것이 필요했었다. 온몸이 잠길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신혜의 몸에 안기면 비로소

안정감이 찾아오곤 했던 지용은 신혜가 행복해지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마녀같은 신혜의 엄마의 목을 아이폰 줄로 휘감아 죽이는 동안 지용은 집에 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를

떠올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던 한 여자를.

 

메일과 트윗같은 은밀한 방법으로만 연락을 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지용은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 신혜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고 자신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믿던 신혜를 찾아 나선다.

 

서서히 밝혀지는 신혜의 비밀들. 죽었다는 새아빠와 살림을 차려 이국으로 도망갔던 신혜.

지용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신혜를 찾아가 마음속으로 외친다.

'나는 다만 부드러운 것을 원했을 뿐이야.' 하지만 더 이상 부드럽지 않은 그녀를 두고 발길을 돌린다.

 

사랑이라는게 그렇다. 내가 죽더라고 상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 줄 수 있는 것.

 

집안에 못난이 막내아들 지용은 신혜를 통해 숨을 쉬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에 위안을 느꼈지만

신혜의 삐뚤어진 사랑은 지용에게 죄를 짓게 하고 엄청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신혜는 자신의 사랑과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설사 지용이 자신의 엄마를 죽이고 미래마저 죽여버렸지만 조금의 후회도 없을 만큼 자신의 사랑은

순결했고 아름답다고.

 

사랑이란게 그렇다. 모든 오염도 죄악도 느껴지지 않는 직진의 방향으로만 치닫는 브레이크 없는 일방성.

 

순수한 사랑을 이용하여 죄악으로 이끄는 신혜의 사랑도 사랑이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옳다고 믿어 살인을 저지른 지용의 사랑도 사랑이다.

함께 살던 여인의 딸을 범하고 급기야 지용까지 끌어들이게 하여 살인을 교사한 새아빠의 사랑도 사랑일까.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무형의 폭탄같은 것.

 

맹목의 사랑으로 달려갔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반전까지 가미된 멋진 소설이다.

인생이란 달고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야. 때로는 맵고 짜고 뜨겁고 달콤하고..그렇게 오묘한 것이지.

홍콩의 구룡반도 끝에서 신혜를 두고 발길을 돌리던 지용은 신혜와 함께 평생 지옥에 살 것임을

예감하며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과 살인과 복수가 난무한 이야기속에서도 사랑은 위대했노라고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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