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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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은 비어 있음이니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空)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空)으로 꽉 차 있습니다.'

공(空)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어 있음으로 해서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고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꽉 차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공윤후도 그런 존재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같은 존재.

 

 

경기도 도개산 404번지 무덤 속에 공윤후가 산다.

1982년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에게 나이라는 숫자매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역시 있지만 없는 공(0)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둔갑해 다시 살아가는 존재. 공윤후는 영원불사의 비밀을 가진 도깨비인가.

조부로 알려진 공청옥이 어느 순간 세상에 나타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의 아들인 공해경 역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고 사라진다.

공윤후는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슬프고 눈물 흘리는 여자들을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부풀어 오른 눈, 녹아내린 듯 쳐진 살덩어리...여자는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윤후는 여자의 얼굴에 매달려 있던 육중하고 단단한 슬픔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위장한 것의 정체를 보는 데는 오히려

그 눈이 가장 큰 장애가 되지." -24p

 

그녀에게 매달린 섬유종 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해석되어진 아픔과 고통 덩어리일 뿐.

그 덩어리를 달고 있던 그녀의 내면은 전혀 보지 못하는 맹과니의 눈은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일 뿐이다.

 

설화로 전해지는 도깨비와 혹부리영감의 이야기같기도 하고,

신출귀몰했던 전우치의 이야기 같기도 한 공윤후의 이야기속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마법이 숨어있다.

 

 

 

"둘이 있다고 덜 무서운 건 아니야. 겁나 살벌한 인생이잖아. 결혼은 말이야, 혼자인 것이 무섭지 않다고

여겨질 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무서울 때 둘이 되면 두배 무서워지고, 셋이 되면 세 배 무서워진다고." -90p

 

미술학원 원장인 민혜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외로움에 빠진 병구에게 공윤후는 말한다.

홀로남을 병구때문에 차마 눈을 감지 못했던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이어온 반지를 병구에게 남겼지만

병구는 그 반지를 엄마와 함께 무덤에 묻었었다.

강원도의 어디선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민혜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니게 되고

어느 날 공윤후에게 홀려 도개산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병구는 민혜를 구하기위해 도개산 구덩이로 향하고 가까스로 그녀를 구출한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민혜는 그제서야 볼품없어 보이던 병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과연 민혜는 엄마의 무덤속에 묻혀있던 반지의 변신이었던가.

마술이라기 보다는 도술을 써서 공윤후는 외로운 병구에게 짝을 맺어주려 한 것인가.

 

 

"보물은 보물을 감당할 후 있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야.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각기 다르지.

너도 누군가의 보물이야. 그리고 내가 그 보물을 이제 여기 숨길 거야. 꼭꼭 숨어 있다가 누가 널 찾아내는 잘 봐." -155p

 

나도 누군가의 보물이었을까. 그리고 내 보물을 알아보고 찾아냈을까...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윤후의 말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존재하지만 없는 공윤후처럼 우리는 그의 존재를 평생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어떤 존재들.

 

공윤후는 지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는 느껴지고 혹은 만날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면 혹처럼 달려있는 아픔을 떼어줄지도 모르고 파란 코트의 안감을 찢어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 너에게 갈게'하는 편지를 건네줄지도.

그를 믿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보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그를 만날 가능성이 없다.

길가에 서있는 회화나무가 보인다면 조용히 속삭여보자.

'어이 공윤후에게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줘'

나도 공윤후를 통해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얻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가 내게 와줄까?

"어이 김씨 나를 찾았어?"하면서.

 

환타지속 도깨비 세상에 다녀온 느낌은 조금 혼란스럽다. 시공을 넘나들고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그를

쫓다보니 어느새 환하게 아침이 밝는다. 꿈처럼 내게 공윤후가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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