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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평점 :
"왜 그렇게 매일 글을 올리세요. 별로 잘 쓰는 것 같지도 않던데."
언젠가 대학후배가 저자에게 물었답니다. 딱히 반발할 수가 없었지만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그 부끄러운 글을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바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셈이다."
후안무치라는 말이 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적어도 우리의 '거지 교수'는 낯이 두껍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야학을 나와 대학까지 입학했던 의지의 한국인이었던 그가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거리의 인문학자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지탱했던 것은 책이었다.
전작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는 한국판 '빅이슈'를 창간해보겠다며 3년간 빚으로 버티다가
딸아이의 피아노에 압류딱지가 붙는 바람에 '피아노 구하기'용 출간이긴 했지만 제목이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그동안 모아놓은 3천권의 책들도 빚잔치로 팔고 말았다니 그의 분신같았던 책들이 아우성을 어찌
견뎠을까 싶다.
고등학교 1학년때 발작처럼 집을 나선 그가 문학 전집을 팔아 겨우 목포행 편도 기차표로 바꾸고 나서
'내게 문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게는 해주었지만 돌아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그렇게 많은 작가의 그토록 절절한 이야기들이 고작 목포행 편도 기차라니요. 그 때 알아버렸습니다.
문학은 떠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주진 못한다는 것을.' -177p
문학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문학에게서 달아나려 발버둥치며 살았다던 그는 결국 문학으로 돌아왔다.

작가란 거짓말하는 재능이 바닥나 이제는 진실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베르나르 키리니의 소설
'거짓말 주식회사'의 문장처럼 그의 글에는 진실만이 넘실거린다.
겨우 교통비정도의 강의료를 받거나 혹은 무료로 달려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말들은 '사랑'인듯하다.
자신의 삶 80%는 무모함이었다고 말할만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어둠속에 잠긴
사람들이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 거리의 노숙인들...미혼모에 외로운 사람들...
그들에게 인문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누군가 자신들에게 정신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적어도 어둠에 갇힌 삶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흑인 여죄수의
대답은 거지교수 최준영이 저렴한 강의를 위해 뛰어다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예사롭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도 그에게는 문학의 발판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며, 다른 누군가의 삶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던 거지요....' -135p
작가 박범신은 한동안 절필을 선언하고 다시 글을 쓰면서 말했다.
'내 안에 고인 뭔가가 옆구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노라고.
마치 무당이 무병을 앓듯이 쓰지 않으면 아팠노라고...
작가 최준영도 고인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리고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라, 책을 읽다보면 고이는 게 있을 것이다.'
블로그를 포기하고 페이스북의 논객으로 소통에 성공한 그가 건네는 이 말이 왜 이리 위안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 역시도 문학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그가 쓴 글이 부러워 오늘도 읽고 내일은 글 좀 쓰련다'고 답하고 싶다.
젊은 시절의 뾰족함이 잘 다듬어져 할 말 잘 하고 살아가는 그의 풍요로움이 부럽다.
글쎄 왠지 그의 소설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에게 고인 글들은 우리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미 너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