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 더위를 식혀줄 문학장르로는 역시 미스터리나 스릴러가 최고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여름에 더 그리운 것은 바로 그가 이 계통 최고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작품들이 치밀하고 무거웠다면 특이한 제목을 지닌 '비정근'은 대나무를 얼기 설기 엮은

죽부인같은 작품이랄까. 바람도 시원하게 통하고 많이 심각하지 않은데다 시원하고 달콤한 팥빙수를

먹은 느낌이다.

 

 

주인공 '나'는 천성적으로 일하기를 싫어하고 돈은 없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싶은 미스터리작가가 꿈인 기간제 교사이다.

6편에 등장하는 비정근교사, 즉 기간제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절대 몰입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큰둥한 교사이다.

어차피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람처럼 떠나야 할 사이인데 괜히 정만 들면 곤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은 사건해결에는 그만인 모양이다.

 

6X3이라는 아주 희한한 메시지를 남기고 죽은 여교사 사건은 어느 정도 한자를 이해해야

할 내용이지만 초등학생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봤다는 것이 해학적이다.

살인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심각하다는 느낌보다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술래잡기같은 느낌이다.

 

1/64는 분명 무엇인가를 나누는 것일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예상대로 배분율과 상관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 것들의 맹랑함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녀석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세상이

있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을 흉내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0X5+5+1이라니..난 정말 수학이 싫다 아니 산수이던가?

암튼 정교사의 죽음으로 대신 비집고 들어간 이번 학급에서는 요즘 아이들의 이기심과 소통부재의

심각성을 잘 그려놓았다. 신출내기 교사가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었던 노력이 아이들의 맹랑함으로

비극이 되어 버렸다. 사실 요즘 학교가 다 이모양이다. 아니 학창시절 교사를 아주 싫어했다는 것을

보며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삐딱한 교사나 학생은 있었나보다.

어디 무서워서 교사노릇 해먹겠나 싶은 안타까운 작품이다.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을 하겠다니...이건 좀 너무 심한 협박아닌가?

분명 수학여행을 싫어하는 아이가 보낸 편지일텐데...

사실 수학여행보다는 운동회가 싫어했던 아이가 범인임이 밝혀지긴 하지만 도대체 어린 것들이..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가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152P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중략)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것들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186P

 

무심한 듯 삐뚜름한 비정근 교사이지만 진정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물론 작가의 말이기도 하고.

비정하고 더러운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돌직구가 내 마음에도 와서 박힌다.

가벼운 작품들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발랄함으로 마음이 밝아지는 작품이다.

아직 더위가 물러가려면 한달 이상이 남았다고 한다. 마지막 더위를 이 책으로 이겨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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