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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역사가 곧 욕망의 역사입니다.' 작가의 후기에 쓴 이 글에 공감 한 표!
다만 칼의 양날처럼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비극과 희극을 오갈 뿐.
모든 것을 다 가질 뻔한 남자가 있다. 아니 있었다.
미디어의 시대인 만큼 잘 생기고 똑똑하고 유쾌한 아나운서로 대중을 사로잡은 한석호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잘나가는 남자였다.
가난했던 부모는 잘 사는 사장집에서 머슴살이와 다름없는 자가용 기사로, 식모살이로
그를 키웠다. 중 3때 사장의 동생이 엄마를 덮치는 장면을 본 후 그는 세상을 향해 이를 갈았다.
고소대신 합의금을 받아 만둣집을 차린 부모를 증오했다.
수치스런 과거를 덮기 위해 그는 성공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180cm가 넘는 키에 근육질의 몸을 키운 것도 성공으로 가기 위한 좋은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나 깜빡 넘어가게 만드는 말솜씨로 그가 섭렵한 여자들은 단지 그의 욕망의 재물일 뿐이었다.
1년이 넘게 만난 여자는 없었다. 지금의 아내인 미선이 방송국 회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08/16/19/hyunho0305_1985553517.jpg)
연이는 석호를 사랑했고 모든 걸 걸었지만 신분상승의 열쇠였던 친구 미선이를 석호가
선택함으로써 버려진다. 연이는 그를 잊기위해 일본으로 떠나봤지만 결국 다시 그의 언저리로 돌아온다.
사랑이란 그렇더라. 모든 것을 걸고 덤빌 수도 있을만큼 치명적이고 버려져도 포기하지 못하는 치졸함을
포함하는 어떤 것. 하지만 목숨을 걸고라도 할 수밖에 없는 이카루스의 날개와도 같은 것.
그래서 사랑과 욕망은 닮았어.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신감 넘치는 출근길에서 느닷없이 끼어든 어느 남자만 없었다면
기가 막힌 인생 스케줄이었는데...인생이란게 그렇지 걸림돌은 어디서나 있는 법이거든.
그 남자, 조태웅은 그렇게 잘 나가는 석호의 인생에 끼어든다. 잔인하게.
그에게는 석호의 모든 것이 쥐어져 있었다. 심지어 아내외의 여자와 나눈 섹스까지도.
'지금 네곁에 3명의 섹스 파트너가 있지? 일주일안에 세 여자중 한 명을 죽인다면 너의 죄를 사하노라.'
배후는 누구일까? 이렇게 철저하게 석호를 알고 있을만큼 가까운 누군가가 배후일텐데..
미친 조태웅을 없애기 위해 고용한 흥신소 사장도 소용없고 이제 구입한 권총으로 직접 그를 죽여야 하는 석호.
안타깝게 석호를 사랑하고 그의 곁에서 맴돌던 연이는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한 것일까.
그런 그녀만을 바라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했던 연이의 남편 재우의 사랑으로 모든 것은
막을 내린다. 고요하게. 다섯 개의 강을 건너 그렇게 조용하게 사라져 간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08/16/19/hyunho0305_6608371484.jpg)
석호가 두려워했던 죽음은 반드시 심장이 멎고 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을 때, 자신이 속한 대륙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리는 것.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잊혀지는 것.
그렇다면 과연 그의 마지막은 그가 두려워했던 '죽음'보다 행복했을지 묻고 싶다.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늘 불행을 통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로부터 행복을 건져내고 늦게서야 후회한다.
석호가 간절히 바라던 신분상승은 그의 자유분망한 스캔들로 인해 막을 내리고 걸리적 거리던
여자의 죽음이 그를 파멸로 이끈다.
전체적인 스토리로 보면 작가의 말처럼 시뻘건 육회 한 접시를 내놓은 주방장의 심정이라는 말이
딱인 작품이다. 입맛이 다셔지면서 오감이 달아오르는 짜릿한 그런 쾌감 같은 것 말이다.
난 늘 그의 이런 솔직함이 좋다. 그리고 직구를 던지든 커브를 던지든 언제든지 받아 낼 자신이
있다는 듯 넉넉히 자리잡은 포수의 포스같은 그의 자리잡음이 늘 좋다.
전작인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처럼 감동스럽지도, '카시오페아 공주'처럼 몽환적이지도 않은
이런 돌직구 작품도 참 좋다.
어느새 열일곱번째 작품이라니. '싱크홀'같이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것같은 아찔함이
느껴지는 다음 작품 기대해도 좋을라나.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그의 재능, 정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