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카피에 덧붙여 '침대는 희망입니다'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아카리는 서른 한 살의 싱글로 그동안 꿈꿨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원룸 맨션을 얻어 이사를 한다.

그녀의 대학동창인 요시코는 여전히 통금시간이 있을만큼 고루한 가정의 외동딸로 언감생심

독립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동안 다다미방에서 요를 깔고 지내왔던 아카리에게 멋진 침대는 언젠가 종말을 고할

싱글시대의 마지막 깃발이며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남자들을 위한 에로틱한 목적을 위한

성역이다.성역(城域)?, 성역(性域)?

 

 

요즘 시대에 서른 한 살의 여성을 노처녀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아카리와

요시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넘어 결혼에 대한 열망으로 조바심을 갖고 있다.

아카리는 그동안 몇 몇 남자와 연애도 하고 섹스도 즐겼지만 사실 남성들의 본능이나 심리에

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여전히 처녀를 간직하고 있는 요시코는 결혼할 남자에게 자신의 처녀를 선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과연 요시코와 같은 여성이 몇이나 남아있을지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아카리에게 몇 년전 가볍게 사귀었던 후미오에게 연락이 오고 혹시나 싶어 나간 자리에게

조금은 세련되어지고 성적인 면으로는 더 조급해진 후미오의 모습에 실망을 느끼게 된다.

아직은 순결함을 간직한 아카리의 침대에 후미오를 끌어들이기에 그는 너무 속물이기 때문이다.

헛물만 켜고 돌아가는 후미오.

 

같은 회사 동료인 우메모토는 성실한 사람이긴 하지만 '남자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요시코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두 사람을 초대한 아카리는 자상하고 깔끔한 우메모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조금쯤 수다스럽기까지한 우메모토는 '와다씨는 너무나 편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희한한 여성관을 내어 놓는다.

연상일 것. 이혼한 여자일 것. 처녀는 안됨.

하긴 우리나라도 이혼한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총각과 결혼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결혼관이나 연애관은 종잡을 수가 없다.

다만 '자신이 뭘하고 싶은지 잘 모르고 남성에게 종속적이면서 기대하는 바가 큰 덜 여문 처녀'

보다는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일을 인정하고 화끈하게 이혼해버린 주장이 명료한 이혼녀'가 더 매력을 느낀다는

점에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큰 희망을 품고 독립을 감행했던 아카리의 '성욕의 공간'이 사이 사이에 '차분한 공간'으로 쓰는 건 좋지만

매일같이 '차분한 공간'이기만 해서 우울해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런 아카리의 모습에서 나는 오래전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누구나 나의 소탈함과 씩씩함이 좋고 말이 통해서 편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갈까'하고 손을 끌지는 않았던 것같다.

여성적인 매력이 없어서? 아님 빈틈이 없어서?

 

젊은 커플들의 연애와 결혼관을 재미있게 풀어쓴 작가의 나이가 사실은 여든이 넘었다니...그렇다면 이 발랄하고

젊은 필력은 그녀의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대를 뛰어넘은 작가의 유머는 '섹스 엔 더 시티'의 명성을 뛰어넘을 듯하다.

오늘도 뜨거운 '성욕'을 기다리는 '침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자꾸 상상이 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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