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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평점 :
서민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수수하고 얼굴은 더 수수하며 이 책은 수수(秀秀)하다.
'기생충'이란 이름에서 선뜻 책을 집어들기가 망설여졌지만 띠지에 있는 저자의 방실방실한
얼굴을 보니 이런 사람이 쓴 글이라면 징그러운 내용만 있지는 않겠다 싶었다.
호오 역시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기가 막힌 책이다.
"어떻게 된 게 일반인이 읽을 만한 기생충책이 세 권밖에 없냐?"
저널리스트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과 다른 두권은 모두 이 서민씨의 책이란다.
그야말로 한국의 기생충계를 휘어잡은 인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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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4학년 때 하고 많은 과목중에 왜 기생충학을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남다른
소신이 '기생충 열전'이라는 '사기열전'에 못지않은 명저의 탄생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생충학'을 재미있게 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주 잘 쓴 책이다.
어려서 대변을 채집하여 기생충검사를 할만큼 '기생충 창궐'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기생충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셈이니 한 번쯤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했던 생각은
기생충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인연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었다.
매년 기생충약을 먹고는 있지만 내 몸 어디에선가 기생충이 없다고 확신할 자신이 없어진다.
회충이나 요충, 간디스토마, 폐디스토마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 이렇게 많은 기생충이
있다니 어느 학자의 말대로 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맞기는 할 것인가.
기생충이 인류보다 훨씬 더 유구한 역사를 가졌을 뿐아니라 개체수도 훨씬 많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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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가 무서운 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생충이라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모기가 옮기는 질병이어서 바이러스같은 것이 인간의 몸에 침투하는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모기의 침에 기생하는 충이 들어가 병을 유발한다니..
'바람의 딸 한비야'는 자신의 책에서 말라리아 약의 독성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오래 먹었던지 간에 이상이 올만큼 약 자체가 상당히 독하는 얘기다.
그러나 그 말라리아 예방약도 100% 막아주지는 못한단다.
오죽하면 100% 예방백신을 개발하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니 말라리아 퇴치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과제인지를 알게된다.
흔히 조는 사람들을 보면서 '체체파리에 물렸냐'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 체체파리가
'감비아파동편모충'이 몸안으로 들어와 수면병을 유발한단다.
희한하게도 얼룩말에는 잘 달려들지 않는다는데 언젠가 쓰레기처리장에 이상이 생겨
파리떼가 창궐했던 그 때, 세로 줄무늬 헝겊이라도 집을 감쌌더라면 파리가 덜 꼬였을지도
모르겠다.
TV에 나와 입담을 자랑하기도 할 만큼 재치가 있는 저자인지라 그의 기생충강의는 위트가
있고 이제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던 기생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얼른 기생충약을 종류별로 사다 먹어야 겠다는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촘촘한 모기장도 하나 더 구입해야 겠고.
이 책이 여러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니 조만간 기생충예방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의
주식이 오를 것만 같다.
인기 과목을 마다하고 기생충학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 저자가 참 특별하다는 증거일텐데
이 책을 내게 된 인연도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을유문화사'야 늘 묵직한 작품을 출판하는 회사로 유명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그 출판사
마당에서 키우고 있는 유기견을 보고 결정을 했단다.
'이렇게 버려진 생명을 소중하게 거두어 키워 주는 회사라면..'하는 생각에서.
마음 따뜻한 회사와 기생충을 사랑(?)하는 학자가 만나 세상에 나온 이 책이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기생충들이 여전히 내 몸에서,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다시보자 기생충'이라는 표어라도 걸어놓고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