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을 꿈꿔본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환갑의 엄마와 함께 배낭여행이라니.
서른 살이란 나이를 먹은 사나이가 연인과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늙어가는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은 살짝 늙어가고 있는 나에게는 눈이 반짝거릴 일이다.
세계여행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젊어서 나도 몇 몇 나라를 여행해본 적이 있었다.
소원을 물어오는 친구에게 '나 이담에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 체력이 있다면 아들녀석하고
배낭여행을 하고 싶어'했었다.
한데 그건 내 소원일 뿐이고 아들녀석의 소원은 멋진 여자친구와의 여행쯤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내심 가망없는 소망을 품은 내게 이 책은 '할렐루야'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을 겪게 된 아들은 엄마의 환갑잔치에 쓸 돈을 모아
엄마에게 '세계여행권'을 안겨드린다.
하긴 요즘 누가 환갑잔치를 하냐만, 문제는 이 여행권이 뽀대나는 크루즈여행권쯤 되면
좋으련만 배낭여행이란다. 아무리 인생은 육십부터라지만 그 나이에 배낭여행은 무리가 아닐까.
심지어 아직 환갑이 먼 나조차도 지방여행 2박 3일에 일주일간 몸살이 기본인데 말이다.
계란 세판의 나이를 합친 두 사람의 여행은 그리 낭만적일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핏줄이 땡기는 가족이라 해도 기나긴 여행, 그것도 빈티지한 여행에 부딪힐 일이 한 두가지
였을까.
인천공항이 아닌 인천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칭다오로 향하는 배에서 시작된 여행은 육로로 이어지는
반도의 끝 싱가포르에 이를 때까지 만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미처 봄이 오기전 시작되었던 여행은 꽃피는 봄이 가고 제발 더위만은 먹지 말아달라는 아들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여린 엄마를 쓰러뜨릴 만큼 지독한 무더위에 시달리는 계절을 지나간다.
'아들 몇 푼 아끼겠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빨리 숙소 잡고 좀 쉬자'라고
폭발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에요.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제 발은 안보이시죠?'
라고 아들은 항변한다.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갈 위기는 다시 봉합되고 예전과는 다르게 좀 더 여유있는 일정을 갖게 된다.
왜 좀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지 못했을까.
여행을 떠나보면 우리는 생소한 나라의 경치만 보는 것이 아니다. 결국 만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제 생각보다 중국은 조금씩 청결함을 찾아가는 것같고 순대속처럼 채워지는 기차안의 승객들은
언젠가는 우리처럼 느긋한 기차여행을 즐길 날이 올 것이다.
전쟁의 상처로 여전히 미국인에 대해 비자 내주는 것을 꺼린다는 베트남은 우리가 일본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아픔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순진무구했던 동남아의 사람들은 이제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때문에 돈맛을 알아가고 순간의 욕심이
자신의 나라를 먹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고.
캄보디아쯤으로 여행갈 계획이었던 나는 툭툭이 기사를 어떻게 섭외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특히 불친절과 바가지의 나라 라오스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필리핀의 마닐라는 패스트푸드점앞에도 장총을 든 경비원이 서있을 정도의 치안이라니 갑자기 우리나라가
고맙게 느껴진다.
스리랑카에서는 차장대신 엄마가 승객들에게 차비를 받고..정말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은 위대하다.
하필이면 '쟈스민 혁명'에 휩싸인 이집트에 도착한 모자는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 날 쏘아댄 축포에
놀라지만 축제에 휩싸인 거리에서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막을 내리는 현장을 목격한다.
하지만 1년후 그 희망의 대통령이 다시 축출될 것임을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막의 땅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인생은 가끔 이렇게 오아시시를 만나 지친 몸을 쉬어도 좋지 않을까.
아하..이집트 사람들도 유대인처럼 남자들이 장을 보는 군.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여전히 낯이 두꺼워서 원 예수님이 나셨던 고향이라는게
믿어지지가 않을만큼 까다롭고 인정머리 없는 나라이고. 나 역시 평생 갈일은 없겠어.
'부러우면 지는거다' 하지만 부럽다.
내 나이 환갑이면 아들녀석은 아직 서른에 이르지 못한 나이가 된다. 그래도 아들아 너도 내 손잡고 같이
배낭여행 안해줄래? 이 책을 녀석이 잘 볼만한 곳에 놓고 하루에 한 장씩 읽게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해 아들아. 우리도 이런 책좀 써보자. 엄마 성질 안부릴게 약속해.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원준씨 모친 동익씨, 사람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그저 나의 마음을 먼저 전하면 될뿐...이라던 말씀 잊지 않을게요. 진심으로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