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클라이머즈 하이: 뭐에 홀린 듯 미친 듯이 고도를 높여가는 것, 흥분상태가 극한까지 달해

공포감이 마비되어버리는 상태.

 

얼마전 아시아나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추락하는 사건에 이어 이 소설의 주무대인

군마현 오스타카산과 경계에 있는 나가노현 중앙 알프스산에 등산을 갔던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실제 1985년 8월 12일 도쿄에서 오사카로 향하던 JAL123편이 정비불량으로 추락한 사고와

이 사건을 취재하는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전쟁과도 같은 사투가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마흔 살의 유키는 군마현의 지방신문 '긴타칸토신문'의 프리핸드 기자이다.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몸을 팔아가며 자신을 키웠다는 상처를 가진 유키는

열 세살이 된 아들 준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을 알고 고민한다.

8월의 그 날은 회사의 등산동호회인 '오르자'팀의 안자이와 '산악인의 성지'라고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약속이 된 날이었다.

하지만 유키와 안자이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된다.

안자이는 조토마치의 길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고 유키는 JAL기의 추락사고를 취재하는

총괄데스크를 맡았기 때문이다.

 

 

유키는 기자들을 사고 현장에 배치하고 신문에 실릴 기사를 고르는 등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전쟁은 시작된다.

누가 사고 현장인 오스타카산에 먼저 올라 기사를 쓸 것인가.

등산장비도 없이 사고 현장에 오른 두 기자는 참혹한 현장에 충격을 받고 트라우마에 빠진다.

과연 그 현장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인의 자세일까. 읽는 독자들을 배려해서 전쟁터같은

현장의 모습을 채색하는 것이 옳은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 모든 것은 유키의 판단으로

결정하게 된다.

불우한 어린시절의 아픈 상처외에도 자신의 부하였던 모치즈키 료타의 죽음에 얽힌 상처가 있었던

유키는 자신으로 인해 후배기자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신문사내에 존재하는

'사장파'와 '전무파'간의 알력에 휘둘려 사사건건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한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안자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는지를 파헤치던 유키는 어린시절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직장 동료 이토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서들과 성추문을 일으키는 '사장파'를 쓰러뜨리기 위해 '전무파'인 이토가 은근히 동조할 것을

요구하지만 유키는 거절한다.

 

항공기 사고에 얽힌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특공작전과 같은 기자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주요신문사를

제치고 특종을 잡을 수 있는 순간 유키는 기사를 포기한다. 혹시라도 오보가 될지 모를 위험때문이었다.

과연 기자출신의 저자만이 쓸 수있는 '총괄데스크'만의 고뇌가 절절히 느껴진다.

더구나 과거의 딜레마였던 모치즈키 료타의 사촌여동생의 투고를 실은 책임을 지고 유키는 좌천되고 만다.

 

많은 세월이 흘러 유키는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와 쓰이타테이와에 오른다.

산을 오르면서 유키는 언제나 자신과 거리를 두었던 아들 준이 나이든 아버지를 위해 하켄을 박아두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녀석은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삶은 '악마의 산'이라고 불리는 쓰이타테이와를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치열함도 자신을 멀리하는 아들을 이해하는 일도 모두 까마득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을 잊고 미친듯이 빠져버리는 '클라이머즈 하이'에 빠질때가 있다.

기자로서 유키는 그런 순간이 있었고 아버지로서, 클라이머로서도 치열한 그 순간을 맞이했다.

산에 오르기로 약속한 친구와의 약속을 그의 아들과 지킴으로서.

 

항공사고와 산에 오르는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전혀 알지 못했던 기자들의 치열한

전쟁과도 같은 삶을 알게 되었다. 아마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신문의 기사들속에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기자들의 땀과 수고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전작 '64'에서 느꼈던 따뜻한 부정(父情)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저자인 요코야마 히데오는 분명 좋은 아버지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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