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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 당신을 위해 차리는 29가지 밥상
임지호 지음 / 샘터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방랑식객'이라 부르는 요리사가 있다. 山堂(산당)이라고도 불리는 남자는 요리가가 되지
않았다면 김삿갓처럼 천하를 떠돌았거나 어디 절에라도 들어가 머리깎고 스님이 되었을 것같다.
가난한 한의사였던 아버지와 절절한 사랑을 했던 생모는 남자가 세 살때 본가로 아이를 들여놓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주어온 아이라는 놀림이 싫어서였을까. 아이는 집밖을 맴돌다가 기어이 고향을 떠나 '방랑'을
시작하게 된다. 가난했었고 자신을 키워준 엄마에게 돈 많이 벌어다 주겠다고 나오긴 했지만
결국 남자는 키워준 엄마에게 따뜻한 밥 한끼조차 대접하지 못한채 불효의 죄를 뒤집어 쓴다.
자신에게 씌어진 불효의 죄를 닦고 싶었는지 그는 늘 밥을 짓고 남을 대접하는 일을 한다.
눈에 띄는 대로 풀과 열매, 심지어 이끼까지도 그의 손에서는 찬란한 '요리'가 된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속에 그는 거지왕이었다가 중국집 배달부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중동의 사막 한 가운데서 요리사 수십명을 거느린 총주방장이었다가..
참 들쑥날쑥한 인생이기도 했다.
호텔 주방장도, 누군가 돈을 댈테니 주방만 맡아달라는 것도 다 맞지 않는 옷 같았다고 했다.
그저 훨훨 발 가는데로 가다가 만나는 사람, 만나는 자연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좋아
그렇게 오랫동안 '방랑식객'으로 살다가 운명같은 여자를 만나 양평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그 터 또한 그의 요리를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던가.
도대체 영혼을 흔드는 그의 요리를 제 때에 맛보려면 그를 이렇게라도 주저 앉혀야만 했기
때문이었단다.
"너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그걸 줘도 너는 지키지 못한다..그러나 넌 한 번은 잘 살 수 있다.
남의 것은 티끌 하나 탐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는 그의 평생의 지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티끌하나 욕심없이 지금도 부지런히 밥을 지어 공양하는 공양주처럼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어느새 손녀를 본 할아버지가 되어 몸을 푼 며느리에게 줄 굴비를 고르는 천상 아비의 모습이 되어서.
이제 산당은 예전보다 덜 자유로와 보인다.
하지만 토종 대한민국의 남자는 우리나라가 좁던지 세계로 향하는 봇짐을 꾸리는 '방랑식객'이 되었다.
세계인들에게 '원더풀'이 절로 나오는 우리 음식을 만드는 그가 참 멋지게 보인다.
이만하면 집밖으로 떠도는 아들자식때문에 속을 끓다가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흡족하실 것이다.
그의 요리에는 위안과 건강과 사랑이 담긴 '생명'의 양식이었다.
언제 한번 나도 양평의 산자락으로 찾아가 그가 그의 아내를 위해 자유로운 날개같은 요리를 해주었듯이
억눌리고 때묻은 영혼을 치료할 그런 요리를 맛보고 싶다.
그의 심미안이라면 첫눈에 내게 맞는 요리를 골라낼 것이다. 이 세상에 '밥정'이 무섭다는데..그러다
정(情)이라도 들면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