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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라는 주제가 서점가를 강타했다.
심지어 노숙자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도도 들려왔다.
정확하게 인문학을 정의하여 보면,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문학,역사학,고고학,종교학,여성학,미학,예술,
음악,신학등이 있다.' -위키백과-
한마디로 자연을 제외한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라는 소리다.
흔히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그 모든 것들.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이 학문이 꽤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시시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인지는 금방 알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인문학이 있으므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외로운 모든 순간에...인문학은 숨어있다.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찾아낸, 혹은 느꼈던 인문학을
대비시켜 은근히 학문을 비껴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옷자락을 끌어들여 앉혀 놓고 있다.
가슴이 미어질 것같은 이별후의 아픔까지도 책읽기로 음미하라고 등을 떠미는 그녀의 인문학
찾아내기는 아주 사소하기까지 하다.
잠시 설거지를 미뤄놓고 막장 드라마라고 욕을 하며 보는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너무 아름답고
멋진 몸매를 가졌다고 말하기 힘든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그녀의 머리속에 저장된 인문학은 꿈틀거리고 있다.
두 딸을 씻기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보다 장애인 언니를 둔 둘째 아이가
느끼는 사랑결핍에서 그 야윈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환히 보인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잘 처리하고 -엄마는 둘째아이를 잘 보살펴주지 않기 때문에-
인정받고,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여인이 될 것이다...그러나,
제 안에 다 자리지 못한 여섯 살 여자아이 때문에 자주 아플 것이다. -203p
그저 장애인인 큰언니도 안타깝지만 동생에게 무관심한 엄마도 많이 힘들겠구나...정도는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녀처럼 결핍의 아이의 미래때문에 울컥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상대의 사랑에 대한 결핍뿐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미지인 나르시시즘의 과도한
잉여도 한편으로 결핍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라고 묻던 백설공주의 계모도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속되게 보일 것이다.
물론 자존감이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계모가 인문학을 안다면 조금 더 빨리, 극렬하게 발견하게 되겠지만.
체중때문에 외모때문에 지친 여자들에게는 삶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보이고, 자신의 욕망이 보이고...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이
보일 것이니...하긴..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에 욕망이 자각으로 변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더 큰 충만이 결핍을 채울 것이니..그녀의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흠..인문학이 결국은 과도한 욕망을 잠재우고 순정의 충만으로 결핍을 메운다는 뜻일까.
자신의 아픔을 엄마와 나누는 것에 낯설었던 여자는 그래서 너무 착했던 여자는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늙은 애'가 되어 '애 늙은이'였던 자신을 토닥여주라고 말한다.
그 충고는 사랑에 집착하고 이별조차 자신의 탓이라고 돌렸던 너무나 착한 여자들 뿐만아니라
저자 자신의 반성이 아닐까.
그녀가 일상과 만난 인문학은 시와 소설, 영화에 드라마까지 참으로 방대하다.
스치는 모든 일상과 연결시킬 자료가 내게는 너무 부족해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차라리 모든 일상속에 떠올릴 것이 없는 인문학 빈곤의 내가 차라리 담백하지 않을까..자위해본다.
그래도 이 책에서 인용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적어도 빈 내 머리속에 저장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인문학이 어렵다고 도망다녔던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그 벽이 두껍고 높지 않음을 말랑말랑하게
주물러 건네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