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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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사랑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스캔들이 조선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21뤈, 세종 5년(1423년) 9월 25일의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전 관찰사 이귀산의 처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사건은 있었을터였다.

자유분망한 요즘 시대에도 세간에 입방아를 바삐 만드는 사건은 바로 이런 스캔들일 진대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간통이라니 세상이 떠들썩했을 것이다.

오로지 이 한줄의 글로만 보면 고관대작의 나리가 고관대작의 안사람과 간통한 것이 된다.

간통한 남자는 영일로 유배를 갔으며 여자는 참수를 당하였노라고 했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할 죄였든가.

 

 

옛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나라를 세웠던 그 무렵 맑은 선비집에 계집아이 하나가 부모와 형제를

잃고 천애고아로 남았다. 멀 일가붙이인 청화당 할머니댁에 의탁된 계집아이는 그 집 손자 서로와

단짝 친구가 된다. 갑작스런 화재로 졸지에 고아가 된 소녀는 말문을 닫았지만 소년이 그 말문을 연다.

그렇게 둘은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둘의 사이를 눈치챈 소년의 어미는 계집아이를

산속 암자에 비구니로 들여보내고 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남자가 붙여준 이름 '녹주'는 자칫 평생을 비구니로 늙을 수도 있었건만

선승 운공의 예언대로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나 환속하게 된다.

얼마 전 끔찍이 사랑하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늙은 이귀산이 녹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산 속에서

끌어내 자신의 아내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귀산의 극진한 사랑에도 녹주는 헛헛 하기만 하다.

그녀에게 사랑은 오로지 서로뿐이었음을 알게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서로와 녹주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도와 예를 거스른 사랑은 위험천만하기만 하다.

 

 

'다들 어떻게든 사랑하고 있을 거다. 그걸 필사적으로 숨기며 들키지 않을 뿐이지.

사랑하는 않고는 아무도 살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그건 다만 사는 시늉을 하는 것뿐이다.'-289p

 

그들에게 다가오는 참혹한 결말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멈추지 못한다.

껍데기처럼 살았던 지난날들이 너무 아쉬워서 설령 불꽃처럼 살다가 스러진대도 그들은 끝내

사랑을 태웠을 것이었다.

기록되지 못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때문에 목숨을 던진 이들이 한 둘 이었겠는가.

그럼에도 스스로를 태울만큼 강렬하게 살다간 남녀들의 사랑에 우리는 돌을 던진 수 있을까.

유독 역사소설에 강한 작가의 언어들이 빛났다.

어디선가 잠들었던 단어와 고어들을 끌고나와 우뚝 세워놓는 열정에 난 늘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랑의 죄목으로 국가의 처벌을 받는 조선여성 3부작의 두 번째 편인 불의 꽃은 또 이렇게 피어났다.

마지막 한 편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처연할 것인지 죽어간 자신들의 사랑을 다시 꽃피워준 작가에게

꿈에서라도 감사하며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불의 꽃잎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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