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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한때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아주 오랫동안 여행자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니 이렇게 여행만 하고도 먹고 살 수있다니 어찌 부럽지 않은가.
물론 그가 낸 책들이 하나같이 베스트셀러대열에 오르는 쾌거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는 여행속의 풍경보다는 사람들과의 교감과 자신과의 대화같은 것들이 더 많다.
어디에서 비행기를 타고 어디에서는 자동차를 타고같은...흔한 여행경로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결코 서두르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유유자적 목적지를 정한 여행에서도 무심코 머물러버린 낯선 곳에서도 그는 전혀 욕심이 없어보인다.
마치 세상을 달관한 수행자처럼 그저 묵묵히 발길 닿는대로 만나지는 인연에도 항상 덤덤해 보인다.
그런 그의 여행기가 왜 인기가 많은 것일까.

'청춘의 시간들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보다 불행한 것이 또 있으랴.' -128p
그렇다. 지나고 보면 하루하루가 금쪽 같았던 그 시간들이 막상 그 시절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비켜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비틀거려보지 않고서는 바로 걸을 수 없으니, 바로 걸을 수 있을 때가지 비틀거릴 수밖에 없으니.
그런 것이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충분히 비틀거릴 수도 있을 일이니.' -131p
쿠바의 명물 '모히토'의 환상적인 맛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을 포함해서...우리는 너무 많이
비틀거렸던 것은 아닐까.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를 사랑하고 입을 맞추고 붙잡지 않고 떠나보내고...그런 그의 여정이
비틀거리는 것까지 포함해서 너무 부럽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일들이 그곳에서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럽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이런 글들에 자신을
진심을 얹는 모양이다.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술의 힘을 빌려 위로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그의 말에 한 번쯤
대들고 싶어지는 이유는 나는 그처럼 삶을 냉정하게 관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슬퍼만 하기엔 그대는 너무나 젊다'고 다독거리는 그의 말처럼 흘리던 눈물을 삼키고
다시 짐을 꾸려 나서야 하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여행기는 늘 쓸쓸하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 길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세상 곳곳을 헤매는 그를 보면 또 제몫의 짐은 있을 것이란 어거지로 잠시
내맘을 다독이게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했다. 담기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그에게도 우리는 짐작하지 못할 번민과 무거움이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글을 보면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