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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소울 - 제3회 살림YA문학상 대상 수상작
김선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3년 2월
평점 :
때로 어른임이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바로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선 아이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읽을 때이다.
다섯 살때 할머니에게 맡겨져 고아처럼 키워진 형민과 캐나다에 조기유학을 다녀와
풍비박산난 집에서 소주 애호가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살아가는 공호.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밑에서 소심하게 자라 말을 더듬게 된 조미미.
이렇게 어딘가 한 구석이 무너져 버린 세 아이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차갑고 고단하기만 하다.
집나간 아들을 찾겠다고 어린 아들을 맡기고 떠나버린 며느리를 십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아들을 쫒아 캐나다로 갔다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주저 앉은 공호의 엄마.
또다른 상처를 지닌 이들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전국노래자랑'은 이들이 잠시 쉬었다가는
안락의자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저 관객으로만 즐겼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할머니와 함께
얼떨결에 참가하게된 형민은 이왕 망가질바에는 제대로 한판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한다.
형민의 절친 공호는 먹을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먹보이지만 같은 반 '왕따' 조미미의 신상정보를
형민에게 전해준다.
스치기만 해도 살이 썩는다고 외면하는 '왕따'조미미를 형민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목적도 없이 할퀴어 결국 자살로 몰아가는 학교폭력과 형민의 담임선생처럼 섣부른 감싸기가
또다른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지켜보노라니 어쩔 수없이 철이 일찍 들어버린 세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면서 성장해나가는 장면은 늦도록 철이 들지 못한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희망을 버리고 행복해는 쪽? 아님 희망을 가지고 불행해지는 쪽.'
부모를 환경을 선택해서 오지 않았음에도 불행속에 한쪽 발을 담근 채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끼는 '사랑'의 서막을 경험하기도 하고
불쑥 화가 나기도 하는 그런 시간들을 지나는 아이들의 '세상 맞서기'가 대견스럽다.
콧날이 살짝 시큰해지는 것같은 오래전 잃어버린 고향의 손맛이 느껴지는 형민 할머니의 맛깔난 반찬이
올려진 소박하고 삼삼한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마지막 결전의 무대 '전국 노래자랑'에 걸려있던 공호의 플래카드에 쓰여진 한마디,
'김공호엄마, 사랑해!'
녀석들은 생각보다 잘자라고 있고 나름대로 멋지게 힘든 시간들과 맞장을 뜨고 있다.
송해씨가 건네준 마이크를 잡고 집나간 아들과 며느리에게 간절하게 외치던 할머니의 안타까운 음성이
가슴을 적신다. 할머니와 형민이가 무대에서 선보였던 '잘했군 잘했어'의 노랫말을 나도 따라 부르고 싶다.
'형민아, 공호야, 미미야, 잘했군 잘했어...작가 양반도 잘쓰고 잘했군 잘했어..'
글쎄, 이정도면 인기상정도는 따논 당상이 아닐까.